필85 2009. 5. 8. 13:03

똥파리


‘세상은 엿 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양익준 감독이 각본을 쓰고 주연까지 1인 3역을 영화, <똥파리>의  부제(副題)다. 제목과 부제부터 이 영화가 문제작임을 암시한다.


  엿 같은 세상에 대하여.

  주인공 상훈(양익준 역)은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으로 여동생과 어머니를 동시에 잃었다. 여동생은 아버지를 말리다가 칼에 찔려서, 어머니는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잡초처럼 자란 상훈에게는 용역 깡패 외엔 할 일이 없다. 시위대를 해산하는 현장과 노점상 철거반에서 용역직원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일이 그의 삶의 방식이다. 고삐리 연희(김꽃비 역)에게도 세상은 엿 같다. 엄마는 노점상을 하다가 철거반과의 다툼 중에 사고로 죽었다. 연희는 월남 파병 후 정신마저 온전하지 못한 아버지와 철없는 남동생을 보살피는 소녀가장이다. 연희는 삶을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연희의 남동생은 친구의 소개로 상훈 밑에서 깡패일을 배운다. 길을 가다 상훈이 무심코 뱉은 침이 연희의 교복에 묻으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더럽게 아픈 핏줄에 대하여.

  상훈이 유일하게 웃음을 보일 때는 배다른 누나의 아들, ‘형인’과 놀아줄 때이다. 상훈은 형인에게 아빠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과자와 장난감을 떠안기기도 한다. 상훈 아버지가 출소하면서 얘기는 빨리 전개된다. 상훈은 어릴 적 보았던 폭력을 그대로 아버지에게 되갚아준다. 아버지를 폭행하는 장면을 조카 형인이 목격하는 순간, 상훈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한다. 상훈은 술만 먹으면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손목을 그은 아버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죽지마라’고 소리친다. 아버지는 살아났다. 그 사건으로 상훈은 새로운 삶을 소망하게 된다. 그러나 상훈의 새로운 꿈도 마지막 채권회수를 나간 날, 신입깡패의 손에 무참히 짓이겨지고 말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자막을 가득 메운 폭력과 욕설에 관객들은 많이 불편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은 거북하다. 상훈의 폭력은 더욱 그렇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같은 편에게도 사정을 두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인 욕은  ‘**놈아’이다. 상훈의 욕은 이렇게 들린다. ‘**놈아, 엿 같은 세상에 내가 가진 것이라곤 주먹밖에 없다. 하나라도 더 가진 너희들이 날 좀 먹여 살려 다오.’ 영화의 후반부에는 그의 욕설을 하도 많이 들어서 특유의 톤이 정답게 여겨지기도 한다.


  폭력과 욕설은 교육이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통해 숨겨지지만 삶 자체가 위협받는 현장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똥파리>는 영화라기보다는 ‘현장’에 가깝다. 위선이 배제된 삶의 현장에 폭력과 가난이 핏줄을 통해 되물림 되고 있다. 면도날로 핏줄을 그어 봤지만 더럽게 아픈 핏줄은 끊지 못한다.


  기억에 남는 두 장면이 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피를 뽑고 상훈은 밤늦게 한강변에서 연희를 만나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되냐? 고삐리인 네가 좀 가르쳐 주라”

연희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흐느끼는 상훈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까지 흘렀다. 마지막 장면은 연희가 신호를 기다리다가 맞은 편 길에서 남동생이 노점상을 철거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이다. 남동생의 얼굴에 상훈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또 다른 얘기가 시작되는 것일까?


  <똥파리>는 좋은 영화다.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밑바닥을 치지 않고는 비상할 수 없다. 나는 양익준 감독에게 묻는다.

  “인생의 바닥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상훈을 왜 죽게 내버려 두었나? 연희의 남동생을 왜 다시 상훈 같은 깡패로 만드나?”

깡패 양익준은 대답할 것이다.

  “세상이 엿 같기 때문이다. **놈아!”


2009.5.7(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