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수영 여섯 번째, 죽음을 맛보다.
지난 주, 해운대 앞 바다에서 수영하면서
등대를 꼭 한 번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든 것이 화근이었다.
괜히 잠을 설쳤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고 해운대 도착한 시간이 6시30분 정도였다.
키 만한 파도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크게 겁먹지는 않았다.
따뜻하리라고 예상했던 바다 수온은 차가웠다. 태풍때문이리라.
적당한 높이의 파도에는 곧 적응이 되었다.
한 팔 한 팔 저어나갔다.
멀게만 느껴졌던 등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동안 파도는 높아졌다.
잠깐 쉬고 갈까 하면서 가까이 가는 동안 장난 아닌 파도가 등대를 때리고 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면서 하얀 거품을 주위로 흩뿌리고 있었다.
그냥 한 바퀴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한 지 50분만이다.
그러면서 좌측으로 도는 어느 순간, 머리끝이 쭈빗하였다.
등대를 쳐부수는 파도의 범위내에 내가 들어간 것이다.
방향을 바꿔 정신없이 팔을 저었다.
파도속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기를 몇 분간, 뒤돌아 보니 등대는 약간 멀어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좀 쉽겠지 하는 안도감과 이런 저런 시시한 생각을 하면서
처음 출발 한 곳으로 향했다.
파도는 이제 집채만해졌다.
파도의 상층부에 몸이 있을 때는 해운대의 건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조선비치 호텔로 방향을 맞추면서 나아가는 동안에 파도는 훨씬 커지고 강해졌다.
동백섬에 부딪치면서 돌아나오는 흰 거품은 주위를 완전히 덮었다.
대단한 파도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내 몸도 그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선비치 호텔 옆은 모래사장이 아니라 바위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난 해운대 백사장 가운데를 목표로 헤엄쳐야 했었다.
파도는 일렁일렁 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바위 주위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번 만 제대로 패대기를 쳐도 나는 흰 거품처럼 부서질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팔을 젓고 발을 구르는 것 뿐이었다.
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파도 안에 있었다.
한 번 더 죽을 힘을 다했다.
슈트는 안입고 오길 잘했지만, 오리발이라도 있었어면 하는 후회를 했다.
해변이 보였다.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뒷편에서 나를 쓸어담는 파도에 난 중심을 잃었다.
아찔했다. 몇 미터 앞에 두고 난 저 곳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참담했다.
파도속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팔을 저어갔다.
모래 바닥이 보였다. 하지만 뒤에서 덮치는 파도는 다시 나를 쓸어 갈 수 도 있었다.
마침 다른 동호회의 한 회원이 잡아 주어 무사히 벗어 날 수 있었다.
문득 앞을 바라보니 많은 분들이 '고생했다'며 박수까지 보내주었다.
나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내가 벗어 놓은 티셔츠와 물이 있는 데로 갔다.
얼마 안 있어 해경이 내가 헤매던 곳에 모트보트를 타고 다녀가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걱정이 되어 신고를 한 것이리라.
오늘 저녁 티브이 뉴스거리가 될 뻔 하였다.
생각보다 죽음은 가까이 있다.
난 아침에 출발 할 때, 태풍속에 수영할 생각을 하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폭풍속으로' 를 떠올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은행강도 보스였던 패트릭 스웨이지는 보드를 들고 폭풍속으로 뛰어들고
FBI인 키아노 리부스는 그를 잡지않고 내버려 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죽는다면 행복이겠지만,
아직은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다.
오늘 아침 해운대에서 짠 맛 뿐만아니라 죽음의 쓴 맛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