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엄마를 부탁해

필85 2011. 12. 27. 09:00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미 스쳐 지나간 뇌졸중으로 극심한 두통과 치매 증상을

가진 엄마였다. 혼잡한 서울역에서 인파에 떠밀려 엄마가 아버지의 손을 놓친

사이 열차는 출발했다. 아버지가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없었다.

 

작가는 큰 딸, 아들, 남편의 입장에서 잃어버린 엄마의 삶을 들려준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모습들이 가족들에게 나타난다,

가족 몰래 복지시설을 방문하여 봉사하고 기부했던 일 같은.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길을 잃어버리고 도시를 헤매는 엄마의 독백이자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엄마가 자식들에게, 남편에게, ‘그 남자’에게 자신의 세월을 풀어놓는다. 엄마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녀의 엄마 품에 안긴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 큰 딸은 로마를 방문하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을 마주하게 된다. 아들의 주검을 사랑의 눈빛과 손길로 안은 여인상 앞에 딸은 무릎 꿇고 눈물 흘린다. 그리고 기도한다. 엄마를 부탁한다고.


  이 시대의 엄마는 한국전쟁을 온 몸으로 부딪히면서 자랐고 결혼 후에는 서너 명의 자식들을 기르면서 논밭에서 소처럼 일했다. 세월이 흐른 후 엄마는 간장, 된장에 밑반찬까지 싸서 장성한 자녀들이 사는 도시로 날랐다.

 

소설속의 가족들은 엄마를 못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동안 엄마를 잊고 지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에게는 인생의 전부였던 나였는데 나에게 엄마는 무엇이었던가?’ 하고 큰 딸은 혼잣말로 되뇐다.


  연말을 보내면서 지난 가을에 읽었던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리게 하는 기사 두 건을 접했다. 하나는 평소에 기부와 선행을 하고 죽어서는 장기기증까지 한 어머니의 삶을 장례식장에서야 아들이 알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친구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중학생 A군의 이야기다.


주요 언론들은 두 번째 사건을 다루면서 A군을 괴롭힌 친구들의 이야기에 중심을 두었다. 나는 자살한 A군의 가족, 학교생활에서의 명품사용, 인터넷 게임의 폐해, 학교폭력과 문자폭력의 심각성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메이플스토리’라는 온라인 게임은 오래할 수록 레벨이 높아지고 아이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가해학생들은 자기들의 아이디로 A군이 게임을 계속 하도록 시켰다. 잠도 못 자게 하였다고 한다. 부모들은 밤늦도록 불 켜진 자녀들의 방문을 한 번씩 열어보고 말을 시켜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엄마 아빠이다. 신경숙의 소설과 최근의 두 기사를 보면서 가족은 좁은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지만 깊은 속을 알 수 없는 관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주말에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나는 괜찮다.’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이다. 나는 주의력을 집중하여 정말 괜찮으신지, 아니면 말로만 그러시는지 알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다.

 

연말이다. 한 집에 사는 내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잃어버리기 전에.


- 2011.12.27(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