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쓴 글

사라진 부산의 문화와 역사

필85 2012. 3. 26. 19:26

강사는 자신을 고고학자라고 소개하였다. 6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외모에 목소리도 느릿하여 나른한 오후, 잠 좀 잘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역사학은 사학과 고고학으로 나뉘는데 사학은 자료에, 고고학은 유물과 유적 같은 물질자료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인류의 기원은 300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문자는 불과 8천년전에 중동지방에 처음 등장하였으면 제대로 된 문자로 상용화된 것은 불과 500년전이라고 한다. 그나마 일부 특권층만 문자를 사용한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고고학의 중요성을 슬며시 흘려 놓았다.

 

강사는 자신이 발굴한 부산의 복천고분이 고고학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김해에도 자신이 직접 발굴한 유적지가 있다고 하였다. 두 무덤의 발굴은 강사 자신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하였다. 고고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되었다.

 

부산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저술배경부터 설명해 주었다. 문벌귀족사회인 고려시대의 귀족은 가야의 역사를 쏙 빼고 신라중심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큰 오류를 남겼다고 강사는 주장하였다. 가야의 역사는 일본의 고서인<일본서기>에서 '임나일본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사는 <삼국사기>가 아니라 가야가 포함된 <사국사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상상한다, 찬란한 철기문화의 발생지인 가야의 존재와 역사적 사실들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들을 보태어 김해, 부산지역이 국가의 주요축으로 자리매김 할 뿐아니라 그들로 인해 국가의 힘이 강성해지는 모습을.

 

강사의 이야기를 듣는 두 시간이 짧아 졸음은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

 

- 2013.3.22(목), 오후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