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知

2012년 방콕여행

필85 2013. 4. 7. 15:17

방콕 여행


  왜 방콕인가? 작년에 유럽을 다녀왔기 때문에 올 해는 아시아의 도시로 가기로 하고 이리저리 물색하다가 태국의 치앙마이를 택했다. 곰곰이 알아보니 치앙마이는 트래킹외에 별로 여행거리가 없는 도시였다. 또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작은 국내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지 않아 그냥 방콕만 여행하기로 했다.


주위에서는 왜 방콕만 가느냐, 방콕에 며칠동안 볼 게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가능하면 도시간 이동을 피하고 한 도시만 깊게 보자는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5월에 일찍 예약을 하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첫날, 방에 콕 박혀서


    부산에서 방콕으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어 편했다. 8월10일 금요일 오전 8시반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길을 서둘렀다. 타이항공의 서비스는 국내 항공사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5시간 정도는 참을 만 했다. 입국수속을 끝내고 공항게이트에서 여행사를 통해 예약된 현지인을 만나 밴을 타고 ‘The Aetas 호텔’로 향했다.


배낭여행에서는 공항 도착 후 호텔까지 찾아가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지만 지난번 빈여행(택시 이용)에 이어 이번에도 편하게 호텔로 이동했다. 운전자는 차에 비치된 네비게이션에 입력된 티아라 뮤직비디오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 중 한 명을 가리켰다. 동희가 ‘지연’이라고 답해 주었다.


호텔방은 넓고 시설도 좋았다. 우리를 안내해 주는 여성종업원은 한국말을 조금했다.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두 현지인의 인상은 모두 착해 보였다. 우리는 짐을 대강 풀어놓고 시내중심가로 가기 위해 지상철도인 BTS역을 향했다.


호텔에서 BTS가 있는 펀짓역까지 10분정도 걸어야 했다. 표를 구입하여 열차를 타고 씨암역에서 내려 복합 쇼핑몰인 씨암 파라곤을 구경 하면서 처음으로 태국 음식을 먹었다. 뷔페식으로 되어 있어 요리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덜 자극적일 것 같은 음식만 골라서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씨암파크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심내 조그만 쌈지공원인 씨암파크에서 푹 쉬었다. 돌아오는 길에 세븐일레븐에서 음식을 사서 호텔방에서 펼쳐 놓고 방에 콕 박혀 배부르게 먹었다.

 

    둘째 날, 친절한 한국인


    토요일에는 왕궁을 가기로 하였다. 씨암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싸판탁신역에 내렸다. 수상보트를 타기위해 안내소로 가서 왕궁으로 간다고 하니 바로 현지인과 흥정이 붙었다. 그리고 500바트에 왕궁직행을 타기로 했다. 생각에 보니 엄청 비싼 가격이었지만 이미 배는 출발 한 뒤였다. 좀더 차분하게 둘러보고 다른 교통편을 구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도 있었지만 자가용 배를 타고 시원하게 강을 가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길게 늘어선 줄의 꽁무니에 붙어 왕궁 입장권을 구입하고 궁내를 둘러보았다. 곳곳에 벽화와 금탑이 있었다. 우리가 건물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동희가 방콕에 대해 공부를 하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토하였다. 저번에 앙코르 와트에 갔을 때는 왕궁벽화의 스토리를 모두 알고 가서 그림들을 퍼즐 맞추듯 찾아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 것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왕실 전용 법당은 화려했다.


더운 날씨에 지치고 배가 고파서 당초 관람하려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건너뛰고 식당을 찾아 카오산로드 방향으로 향했다. 한참을 가니 띄엄띄엄 식당과 여행자들이 보였다. 시원한 곳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식당 앞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으려니 한국 여행자 한 명이 다가와서  ‘거기 맛없어요, 이리오세요’ 한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서나 친절한 한국인들이 고맙다.


그는 자기가 아는 집이라면서 우리에게 근처 식당을 소개하였다. 우리는 너무 지쳐서 에어컨이 빵빵한 식당을 찾았는데 여기는 별도 출입문 없이 개방된 곳에 선풍기만 돌고 있었다. 호의를 거절 못해 식당에서 쌀 국수 네 그릇을 시켰다. 완전 맛있었다. 볶음면 하나를 추가했다. 이것도 대박 맛있었다. 식사외에 얼음 세 잔에 콜라 한 병, 맥주 한 병의 합계가 300바트였다. 가격도 착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내에서도 여행 책에 소개된 ‘나이쏘이’식당이었다.


배를 채우고 난 우리는 본격적으로 카오산 로드를 찾아 나섰다. 시비 걸면 어쩌나 싶은 주민들이 한가롭게 떠들고 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길이 있겠나 싶은 곳을 지나니 대로가 나왔다. 힘들게 찾은 카오산 로드는 외국인으로 북적였다. 거리를 구경하다가 이번에는 맥도날드를 찾아 죽치고 앉았다.


카오산로드를 벗어나서 대로를 따라 한참 걷다가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내내 타고 다녔던 교통편인 툭툭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2인용 의자에 4명이 앉았으니 오죽 자리가 비좁았겠는가만 제일 불편하게 앉은 동희는 잘 참았다. 씨암 파라곤에 도착하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카트를 밀고 가는 점원을 따라가서 식료품 마트를 찾아내었다. 다시 먹을 것을 잔뜩 사서 이틀째 방에서 성찬을 즐겼다.


    셋째 날, 동희가 한 접시만 먹던 날


    그렇게 맛있게 먹던 호텔의 아침 뷔페를 동희가 한 접시 만 먹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다, 동희의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을. 우리는 방콕의 주말 전통시장이 열리는 짜뚜작 시장에 들르기로 했었다. 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끌고 시장옆 공원까지는 데려가서 쉬게 했는데 동희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나와 동희는 호텔로 오고 아내와 동호는 시장구경을 하기로 했다. 동희는 호텔방에 오자마자 자기 시작했다. 나도 딱히 할 일이 없이 책보다가 졸기를 반복했다.


오후 서너 시가 되니 아내와 동호가 장을 잔뜩 봐서 돌아왔다. 그새 동희도 몸이 좋아졌다. 잠시 쉬다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떠들고 놀았다. 식사 후 아내와 나는 잠시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산책을 하면서 보니 호텔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시내 중심에 있든지 아니면 역에 바로 붙어 있어야 하는 데 아쉬웠다. 다음부터는 여행사에 맡기지 말고 직접 찾아서 예약을 해야겠다. 방콕에서 마지막 밤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커다란 TV로 올림픽 승마경기를 보면서 지냈다.


    마지막 날, 높이를 맞춘 건물과 푸른 하늘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체크아웃을 하고 프론트에 짐을 맡긴 후 스쿰빗 거리로 향했다. ?c양꿍이 유명한 ‘수다’식당을 찾아 나섰다. 점심식사까지는 동호가 우리를 안내하기로 전날 저녁 합의를 보았었다. 동호는 책임감 가득한 얼굴로 여행책자를 연신 훑어보면서 우리를 안내했다. 스쿰빗 역에 내렸으나 점심을 먹기에는 일러서 우리는 벤지킷 공원을 찾았다.


공원은 꽤 넓었다. 더위를 피해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눈을 들어 보니 멀리 보이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하늘이었다. 방콕 시내 한 가운데 푸른 하늘이 보인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맞은 편에는 건물 세 개가 높이를 맞추어 서있다.


MP3를 꺼내어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었다. 다음에는 조그만 스피커를 가지고 다녀야겠다. 행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곡을 감상하면서 이런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공원에는 한가롭게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외국인 몇 명만 드문드문 있었다.


스쿰빗 역 바로 앞에 위치한 ‘수다’식당은 수수해 보였다. ?c양꿍과 쏨땀, 볶음면, 수박쥬스와 맥주로 마지막 태국식 오찬을 즐겼다. 나는 향신료를 빼고 주문하긴 했지만 국물까지 깨끗이 비우지는 못했다. 스쿰빗 거리를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우리의 방콕 아지트인 씨암 파라곤으로 갔다.


나는 KFC에서 쉬고 나머지는 쇼핑을 했다. 동호와 동희는 신발을 하나씩 질렀다. 마침 소나기가 쏟아졌다. 씨암 파라곤 입구에서 비 내리는 방콕 거리를 구경하면서 군것질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는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갔다.


저녁 11시반 비행기를 타기 전 간단한 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에서 나는 팍치가 들어간 ?c양꿍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인천공항을 통해서 입국하고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 안의 시간, 여행 밖의 시간


    방콕은 사실 가족 배낭여행지로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방콕여행의 묘미는 쇼핑, 마사지, 태국음식, 밤 문화에 있기 때문이다. 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나머지는 우리가족의 스타일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무더운 날에 거리를 함께 걸었으며 특색이 있는 태국 음식도 많이 접했다는 것이다. 함께 있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


방콕의 도심은 휘황찬란했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서면 가난이 묻어 있었다. 씨암 파라곤과 도심은 넘쳐나는 외국 관광객이 쇼핑을 즐겼지만 현지인은 골목안 리어카에서 꼬지와 닭고기, 튀긴 바나나로 식사를 해결했다. 건물 곳곳에 국왕과 왕비의 커다란 사진이 걸린 기도 장소, 시내 군데군데에서 볼 수 있는 K팝 스타 사진과 간간이 들리는 한국노래, 도요타 일색의 승용차, 이런 모습들이 섞여있는 방콕은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여행하는 짧은 시간보다는 여행을 다녀오기 전, 그리고 다녀와서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키득거리는 여행 밖의 시간이 더 길고 좋은 것 같다.


- 2013.4.5.(금)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