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십자군 이야기(전3권)

필85 2013. 5. 20. 08:34

 

<십자군 이야기 1 >


<로마인 이야기>(전15권)를 읽고 나는 37년생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팬이 되었다. 그녀가 다시 <십자군 이야기>(3권)를 펴냈다.


작가는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기독교 측 기록과 이슬람 측 기록을 샅샅이 읽어 역사순으로 재편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소설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추측’을 책에 담았다. 단순한 기록이 스토리가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십자군 이야기 1>권에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1095년 11월 클레르몽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였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동방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우라는 교황의 말에 유럽의 영주와 귀족은 병사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이후 4년 만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18년에 걸쳐 주변을 복속시키면서 십자군 국가를 완성했다. 그리고 십자군 원정 1세대가 전부 역사에서 물러났다.


흥미로운 것은 십자군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세력은 자기들끼리의 영토분쟁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십자군의 승리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십자군 전쟁 전반부에는.


제2권부터는 이슬람의 반격이 시작된다고 한다.

 

 

<십자군 이야기 2>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기독교 세력은 에데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작령, 트리폴리 백작령, 예루살렘 왕령까지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를 포함해서 4개의 십자군 국가를 중동지역에 세운다. 이어서 십자군 1세대는 물러가고 십자군 국가는 2세대가 담당하게 되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시대의 특징 몇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기사단의 구성이다. 이슬람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템플 기사단과 순례자에게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전쟁에 동원되는 성 요한 기사단의 활약을 작가는 자세히 소개한다. 이들은 몇 백 명의 적은 수로 방어와 공격에 큰 보탬이 되었다. 이들이 쌓은 성채는 너무 견고하여 이슬람 군사들의 공격에 가장 큰 장애가 되었다고 한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난다고 했던가? 예루살렘을 빼앗긴 이슬람세력에 걸출한 영웅들이 탄생한다. 누레딘과 그의 뒤를 잇는 살라딘이다. 누레딘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영토를 통일하고 카이로의 파티마 왕조까지 피를 흘리지 않고 복속시켰다. 후계자인 살라딘은 하틴 전투로 십자군을 대파한 후 1187년 10월 9일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88년전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 이슬람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살라딘은 그들에게 몸값을 지불하도록 하고 목숨을 살려주었다. 당시의 인간 생명에 대한 태도로만 본다면 이슬람편을 들고 싶다.


이슬람세력은 1188년 1월 지하드(聖戰)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되었던 그들의 막강한 군대를 해산시켰다. 예루살렘을 수복하였으므로.

 

 

<십자군 이야기 3>


마지막 제3권에서는 빼앗긴 예루살렘을 찾기 위한 십자군 원정이 이어진다. 사자 심왕이라고 불리는 영국왕 리처드의 활약은 빛났지만 나머지 원정대는 형편없었다. 협상으로만 이슬람과 대적한 신성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 미증유의 패배를 당하고 심지어 포로로 잡히기도 한 프랑스의 루이 9세가 본보기다. 결국 1291년 맘루크 왕조의 술탄 카릴이 기독교 도시 아코를 함락하면서 찬란했던 십자군 국가는 종말을 맞았다.


역사자료를 집대성하여 특유의 필체로 전쟁을 묘사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소설처럼 읽힌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로마 교황청의 뜻을 따라 유럽의 황제와 제후들은 십자군을 일으켰다. 신이 과연 그것을 바랐을까? 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과 중동의 교류가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유럽에 미친 영양은 중동의 그것보다 컸다.


요즘의 중동사태 소식을 전해 듣고 있으면 십자군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누구든 그 땅의 주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현재의 지배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신의 뜻이 있다면 생명을 희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 2012.12.1.

-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