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무진기행
신문을 읽다가 어느 기자가 ‘한국단편문학 중 <무진기행>을 따라올 작품은 없다.’라는 글을 보고 당장 책을 샀다.
안개 자욱한 무진에 잠시 휴식하러 온, 마누라덕분에 곧 제약회사 전무가 될 한 남자의 짧은 이야기이다.
남자는 무진에서 세무서장이 된 옛 친구와 후배, 후배와 같이 근무하는 여선생, 인숙이와 우연히 어울리게 되고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까지 갖게 된다. 남자는 아내로부터 급하게 귀경하라는 전보를 받고 급하게 서울로 향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무진을 떠나면서 남자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서울에서 준비되는 대로 인숙을 부르겠다는 편지를 썼다가 찢어버리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무슨 부끄러움인가? 인숙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무진의 안개는 그의 부끄러움을 감추기에 좋다.
<무진기행>에서 김승옥의 글은 자욱한 안개처럼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남자도, 그의 글도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꿈처럼 무진을 다녀갔다.
“어떤 사람은 다른 이유로 방문을 열고 그러면 다른 사람은 다른 이유로 그 열려진 방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항상 ‘아니 잘왔어!’라고 얘기하는 것이라면 어쨌든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
압축적이면서 많은 비유를 끌어 낼 수 있는 김승옥의 문장이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위해서 어떤 사람은 행복을 위해서 인생이라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유야 어떻든 인생이라는 하나의 시공간에서 만난 우리들은 서로 반갑게 잘왔어!, 라고 인사하며 어울려야 할 것이다.
- 김승옥, 민음사
- 20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