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종종 무국적자 혹은 난민으로 명명되었으며, 신분증 하나 없는 미등록자나 합법적인 절차없이 유입된 불법체류자로 표현 될 때도 있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의 첫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이 무척 쓸쓸하게 읽힐 것이며, 책을 잡고 있는 동안 상처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미니다큐를 만들어 후원을 받게 하는 프로그램의 방송작가인 여주인공(나)은, 자신이 방송일정을 미루는 바람에 17살 윤주의 종양이 악성으로 변해버린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브뤼셀로 도망왔다. 여주인공이 부뤼셀에서 만난 은퇴의사 '박'은 자신의 환자(아내)를 안락사에 이르게 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L이라 불리는 사내, 그는 '존재 자체가 불법인 탈북자'이다.
L, 풀네임은 로기완, 그는 강을 건넌 후 연길에서 숨어지내는 동안 어머니를 사고로 잃게 되고 그 시신을 판 돈을 품에 안고 유럽으로 숨어들었다. 벨기에 한국 대사관은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는 도시에서 삶을 구결해야 했다. 우연히 로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주인공은 브뤼셀로 향했고 박으로부터 로의 일기장을 받아서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분노하고 절망한다.
세 명의 인물이 공통적으로 처한 상황은 '누군가 나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게 고작 사는 것, 그것 뿐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세 명의 주인공은 꿋꿋이 살아간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소리치며, 울며, 몸과 글을 쓰며 살아낸다. 살아내야하기 때문에 살아간다.
다만 살아가는 것 외에 하나 더 필요한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작가의 말에서 '소설은 혼자 쓰는 것이되 혼자 쓸 수 없다.'라는 문장은 의미 심장하다. 상처는 저절로 아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 부터 받는 '괜찮아, 이제 그만해도 좋아'라는 한 마디가 필요한 것이리라.
책을 잡았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탈북민 로기완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에 불편한 것이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니셜로만 살아가는 탈북민의 삶이 그것이다. 정상들의 모습만 가득한 TV화면을, 떠나지 않았어야 할 땅을 떠나와서 바닥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그들도 보고 있으리라.
플래쉬가 연속해서 터지는 곳에서는 눈을 뜨고 있어도 물체를 분간할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