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수용소군도_솔제니친_191231
필85
2020. 1. 1. 23:33
"1945년 노보시비르스끄 이송 감방에서 호송병이 문서를 보고 호명을 하며 죄수를 인계받고 있었다. <ㅇㅇㅇ!, 제58조 1항, 25년> 그러자 옆에 있던 호송대장이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무슨 죈가> <아무 죄도 없습니다.> <거짓말 마, 아무죄도 없으면 10년형 이란 말이야!>
"(생략) 그리하여 이제 겨우 새 거주지와 새 가족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한 그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엇때문에?>라고 묻지 않았고 가족에게 <곧 돌아올거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남루한 옷을 골라입고 수용소에서 쓰던 담배 쌈지에 담배를 가득 채운 다음 조서에 서명하러 갔다. 대화는 간단했다. <징역살이를 했소?> <그렇소> <10년만 더 받으시오>"
(<반복숙청>에 대한 이야기 중)
<수용소군도>는 8년간의 감옥살이와 3년간의 유형, 그리고 6년간의 지하작가 생활을 한 솔제니친의 기록문학이다. 그는 '거기서 보낸 11년을 수치스러운 것이나 저주스러운 악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 추악한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가 수용소에서 알게 된 227명에 달하는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책의 내용은 갑자기 닥친 체포에서부터 시작해서 정신적, 육체적인 신문 또는 고문 그리고 감방생활로 진행된다.
"체포! 이것은 당신의 전 생애의 파멸을 뜻한다! 이것은 당신에게 정통으로 떨어진 청천벽력과도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충격을 감당해내지 못해 곧잘 미쳐버리고 만다."
"신문이란 얼마 전까지 자유로운 몸으로, 때로는 긍지를 가지며 살았던, 마음의 준비라곤 전혀 되지 않은 사람을 별안간 잡아다가 녹초로 만든 다음 좁은 배수관속으로 밀어 넣는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이야기 도중 독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다. '대체 무엇이 <죄없는 사람들>을 체포, 투옥하게 만들었는가?' '만약 나의 인생이 다른 길을 걸었다면 나도 사형집행인이 되지 않았을까?' 혁명의 시대, 전쟁의 시대에 수천, 수만이 아니라 수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잡아가고 고문하고 감금하고 유배하는 일들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솔제니친은 '이데올로기'때문이라고 한다.
"이데올로기-그것은 사악한 일에 그럴 듯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요한 장기간에 걸친 강인함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그 사회적인 이론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악행은 은폐하게끔 도와주고, 비난과 저주를 듣는 대신 칭찬과 존경을 듣도록 해준다. (중략) 바로 이 '이데올로기'때문에 20세기는 수백만 가지의 악행을 겪어야 했다"
솔제니친은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억에 의지하지 않고 기록에 의존했다. 기관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비밀스럽게 글을 쓰고 기록물을 숨겼다. 그를 도와주던 사람은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후 자살했다. 이 책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마침내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저자가 목숨을 걸고 이 책을 집필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우리가 악인들을 징벌하지 않고 또 그들을 비난 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비겁한 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또 이것은 새로운 세대들로부터 정의의 온갖 원칙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중략) 젊은이들은 비겁한 행동이 한번도 이땅에서 처벌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행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자기들의 교훈으로 받아 들일 것이다.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쾌하고 또 얼마나 무서인 일이겠는가"
솔제니친의 기록은 현재 한국사회 기준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러시아까지 갈 것도 없이 얼마 전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이 구별되지 않는 지금의 모습도 시간을 조금만 앞으로 당겨두고 본다면 설명되지 않거나 이해 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수용소군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