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황인숙 시집_200315

필85 2020. 3. 15. 22:57
세 권의 시집에 각각 실린 해설편에서 문학평론가들은 황인숙 시인을 '자기부정, 밖을 향한 터짐'의 시인, '황인숙의 고양이', '명랑과 우수'의 시인이라고 표현한다.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詩로 등단한 시인답게 작가의 고양이 사랑은 특별하다. 황인숙의 고양이는 집사를 마음대로 부리는 집양이가 아니다. 내가 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나를 '들여다 보고'있는, '달의 고드름 아래 / 뱃속까지 얼어서 /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때로는 '너무 굶주려 악만 남'은 길양이다.

"(중략) 잔인하고 무정한 이 거리에서 / 구사일생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들 // 고양이들이 사라진 동네는 / 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입니다. / 이만저만 조용한 게 아니겠지요 / 그러면, 좋을까요?"
(<고양이를 부탁해> 중)

  시인의 작품 곳곳에 명랑과 우수가 묻어있다.
"여자의 목소리다 / 차갑지 않은 목소리다 / -영원입니다 / (중략) / 하루, 이틀, 사흘 뒤에도 / 또박 또박 들여주는 / -영원입니다 / (중략) / 보유하고 계신 통장의 잔액은 / 영원히 영원일 듯 / 영혼을 앗아가는 영원이라네"
(<영원> 중)

"(중략) 가출 중학생들 길고양이들 숨어들음직 / 후미진 지하실에서 / 마흔 넘은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 살짝 비애스럽고 살짝 환멸스러운 /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 (중략) / 막 돌아온 심야 배달 오토바이 /구성진 비에 젖는다"
(<봄밤> 중)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양이의 차가운 시선과 조용하고 단호한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의 눈에는 우리가 마주한 적이 바이러스가 아닐 수도 있겠다.

  바이러스로 우울한 봄밤에 황인숙 시인을 만나고 명랑과 우수를 만난다. 새로운 생각을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