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_피에르 바야르_200426
필85
2020. 4. 27. 00:03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사교 생활에서, 선생 앞에서,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열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프랑스 문학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는 '내가 접하는 책들에 대해 비록 내가 그것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얘기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책들에 대한 나의 견해를 제시하지 못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다른 창작활동에 비해 좀 더 소박하긴 하지만 결코 그것들에 뒤지지 않는 진정한 창조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독서의 방식들(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 동냥하는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과 담론의 상황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비롯하여 그가 읽은 책 또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들을 분석하면서 논리를 전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대처요령은 우선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라고 한다. 또한 책을 꾸며내고 자기 얘기를 하라고 주문한다.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흔히 있는 경우이며, 부끄러움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것, 즉 책이 아니라 어떤 복합적인 담론 상황-책은 이 담론 상황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결과이다-에 관심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것이 아마 책들에 대해 말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상황들에대한 이해가 상당히 달라진다. 접근 가능한 몇가지 자료들에 입각하여 무엇보다 우선 중시해야하는 것은 바로 작품과 자기자신, 그 둘사이의 다양한 접점들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논리에 수긍이 가면서도 잘 알지도 못하는 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화에 뛰어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반적인 독자 입장에서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번째는 제목만으로 책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면 읽었던 책 중에서 유사한 주제의 책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읽지 않았더라도 사랑 이야기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언급하면서 국가별 사랑이야기를 전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저자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경우다.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나 박주형 판사의 <어떤 양형 이유>를 읽었다면, 김영란의 <판결과 정의>를 읽지 않았더라도 쉽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책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무런 부끄럽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나의 관심은 어떤 책들이 무슨 사연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나는 독서를 통하여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자기 이야기, 즉 나의 창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