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브람스 평전_이성일_200517
필85
2020. 5. 17. 23:56
"그는 자신만의 새롭고 개성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전영역에 걸친 음악을 창작의 재료로 삼은 최초의 작가였다...새로운 요소를 전통적인 요소에 끌어들이고 옛 대가들과 그들의 토대위에서 대결함으로써 그는 단순히 혁신을 통해 자신의 새로움을 찾는 것 보다 훨씬 더 힘든 길을 걸었다."(<서양음악사>하권 174쪽)
그라우트는 <서양 음악사>에서 브람스를 '진정한 베토벤의 승계자'라고 불렀다. 이 책을 읽은 후 브람스의 곡들을 지난 1년간 틈틈이 들었다. 이성일 작가의 <브람스 평전>을 읽는 동안 자신만의 음악을 찾아가는 브람스를 지켜봤다.
브람스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함부르크와 클라라. 그가 태어난 함부르크의 안개 덮힌 우울한 날씨는, 브람스를 (저자의 표현을 인용하면) '고독과 우수의 음악가'로 만들었다. 신중하고 과묵한 성격을 가진 브람스는 엄격한 구조위에 자신의 음악을 구축해나감으로써 마지막 고전주의 음악가로 평가 받기도 한다. 몇년 전 들었던 바흐의 묵직함과는 다르다. 브람스의 음악에는 세련된 기교가 고전을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브람스를 이야기하면서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빼놓을 순 없다. 슈만 생전에 그의 도움을 받았던 브람스는 혼자 남은 클라라의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연인이 되지는 못했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오늘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오직 한 사람, 그 사람을 묻은 거라네'라고 하면서 '이렇게 고독한데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하면서 절망했다. 브람스가 사랑하거나 결혼까지 할 뻔한 여자가 있기는 했지만 클라라는 특별했다. 그의 순수한 사랑과 문학에 대한 열정, 사색은 그를 낭만주의 음악가로 이끌었다.
브람스의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현주곡, 수많은 실내악곡과 성악곡 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뽑는 곡들이 있다. 이 곡들은 누구라도 첫 눈에, 첫 소절에 반할만한 것이다. 저자가 '네 곡의 교향곡 중 가장 정교하고 엄격'하면서 '그동안 그가 지니고 있던 교향곡 작법의 모든 기술과 총체적 안목을 동원해 이룩한 성취'라고 극찬하는 '교향곡 4번'은 듣는 동안 베토벤을 연상시키지만 때로는 거인을 넘어섰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다음으로는 스물일곱 살의 브람스가 마흔한 살의 클라라에게 생일선물로 선사했던 '현악6중주 1번 2악장', 그외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피아노 랩소디 (op.79)'가 좋다.
브람스, 절제와 낭만을 함께 노래한 작곡가, '고독과 우수'의 작곡가,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사랑속에서 살았던 작곡가를 가을에 다시 만나야겠다. 브람스, 그 이름을 입속에 담아두는 동안 이유없이 따스함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