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페스트_알베르 까뮈_200718

필85 2020. 7. 19. 21:54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마리를 목격했다."

페스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는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소재지에 불과'한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글이다.

 

나는 첫 장을 넘기면서 저자가 '오랑'이라는 도시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부터 소설의 매력에 빠졌다. '솔직히 말해서 도시 자체는 못생겼다.'로 시작하여 '여기서는 계절의 변화도 하늘을 보고 읽을 수 있을 뿐이다. 봄이 온다는 것도 오직 바람결이나 어린 장사꾼들이 변두리 지역에서 가지고 오는 꽃 광주리를 보고서야 겨우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파는 봄인 것이다.'와 같이 계절별 도시의 모습을 그린다.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알베르 까뮈의 사색적이면서도 분석적인 글은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 번역가로 유명한 김화영 교수의 손길을 통해 마지막 문장까지 독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의 글을 밟아가다보면 눈앞에 잡힐 듯이 풍경을 연상할 수 있고 저자가 느끼는 감정에 그대로 동화된다. 번역가는 프랑스에서 알베르 까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쥐떼의 죽음으로 시작된 병은 사람들에게 옮겨지고 희생자 숫자가 점점 늘면서 도시는 절망으로 빠져든다. 도시가 봉쇄되고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우리 시민들의 난폭함, 사망자의 매장, 헤어져 지내는 애인들의 고통'이 더해지면서 주인공 무리를 중심으로 보건대가 조직되고 생존을 위한 싸움이 계속된다.

 

페스트에 대한 공포와 인간의 무력함에 대하여 잘 표현한 문장이 있다. '태양은 우리 시민들을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뒤쫒아 가서 어디든 멈추어 서기만 하면 후려치는 것이다.' 그렇게 쓰러진 시민은 인간의 존엄을 갖추지 못한 채 묻혔다.

 

4월에 시작된 페스트는 다음 해가 시작될 즈음 '병은 소기의 임무를 다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물러가는 페스트는 의사 리유와 가까운 사람들 몇 명을 끝내 데리고 갔다. 도시의 문이 열리고 거리의 환호와 흥분속에서 플랫폼에서는 갑잡스런 이별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재회가 시작되었다.

 

소설은 끝나지만 저자는 '페스트는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 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고 경계의 말을 해 주었다.

 

번역가는 작품해설에서 <페스트>는 칠년간의 작업을 통해서 출판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여기서 소개하는 작가수첩 두 권으로 소설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저자는 '페스트라는 질병을 통해서, 우리들이 고통스럽게 겪은 그 질식상태와 우리들이 몸 담고 있었던 그 위험과 귀양살이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동시에 그러한 해석을 삶 전체라는 일반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고 싶다'(작가 수첩 중)라고 소설의 의미를 밝혔다.

 

번역가는 연대의식을 소설의 중요한 주제로 소개하였다. 작가 수첩 1권에서 알베르 까뮈는 '비록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나 잔혹성에 대해서일망정 연대성을 부정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협력하거나 투쟁하는 것이다....... 일단 전쟁이 터지고 나면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구실로 회피하려는 것은 헛되고 비겁하다. 상아탑은 무너졌다.'라고 썼다. 저자는 전쟁, 질병, 죽음과 같은 부조리하고 '어처구니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였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이 문장이 어지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무게감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의 악은 거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책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문장은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아니다. 실천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문장으로써 '하고, 안하고'에 대한 질문이다.

 

이제 곧 휴가철이다. 휴가지에서 읽을 책들을 고르고 소개하기도 할 것이다. 삶의 방식이 비대면으로 바뀌는 세상에 대한 흐름을 읽고 대처하는 책들도 좋겠지만 '오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문호 알베르 까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