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_200811_수정
넷플의 설국열차 시즌1을 2주간에 걸쳐 감상했다. 느낌이 가시기 전에 7년 전 보았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와 ‘장마르크 로세트 외 2명’의 원작 만화 <설국열차>를 펼쳤다.
프랑스 작가의 원작 만화는 세 편으로 구성되어있다. 1편<탈주자>는 꼬리칸에서 온 탈주자 프롤로프가 ‘꼬리칸 원조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들린과 함께 열차 지도자의 심문을 받기 위해 칸을 이동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프롤로프는 엔진에 도착하고 진실을 마주한다. 2편<선발대>와 3편<횡단>에서는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을 찾기 위해 바다를 횡단하는 설국열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작 만화가 열차 자체의 생존과 지도자 간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있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꼬리칸과 1등칸의 대립과 지구 멸망 이후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메이슨(틸다 스윈튼)이 'Keep your place'라고 명령했지만 꼬리칸의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반란을 일으켜 엔진을 차지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열차는 탈선했다. 남궁민(송강호)이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이제는 벽이 되었다’,고 말한 그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온 요나(고아성)는 하얀 곰을 보게된다.
넷플의 <설국열차> 시즌1은 앞의 두 작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1시간 분량의 에피소드가 10편이다. 반란을 꿈꾸는, 꼬리칸의 지도자이면서 전직 형사인 레이턴(다비드 디그스)이 앞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소환되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여기서는 지도자 내부의 권력다툼이 꼬리칸의 반란과 함께 얽히면서 복잡하게 전개된다. 결말은 남겨 두기로 한다.
세 편의 작품들을 종합하여 설국열차의 세계관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질서'관점이다. 열차는 동력을 담당하는 기관차부터 꼬리칸까지 일렬로 연결되어있다. 농작물을 기르는 칸, 식수를 공급하는 칸, 승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칸 등 각자의 칸에서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란은 아래로부터 시작하여 보급칸을 지나 사치스러운 황금칸으로, 마지막으로 엔진에 이른다. 세 편의 작품 중 어떤 것은 반란을 성공시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기도 하지만 파국을 맞이하는 작품도 있다. 어쨌든 설국열차는 일렬로 달린다.
두번째는 '정의'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머리칸의 생존을 위해, 동력과 물자를 아끼기 위해 꼬리칸을 떼어내는 일 말이다. 설국열차에서의 정의는 궤도를 바꿀 스위치를 가진 자(그룹)에게 속한 것인가? 무임승차한 승객은 태양도 보지 못하고 단백질 덩어리로 연명하는 게 맞는가?
원작 만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넷플의 시즌1, 세 작품 모두 마지막 장면에서 열차는 멈췄다. 그 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 상상력이란 지금 우리의 수준만큼이다. 꼬리는 머리가 될 수 없고 효율을 위해서 꼬리칸을 떼어내는 정도의.
설국열차는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의 열차일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그 비좁은 곳에서 사는 게 가능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에서 몇 년을 먹고 자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여기 시속 11만km, 1초에 30km를 달리는 것이 있다. 태양 주위를 달리는 지구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줄을 세우고 정의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구라는 설국열차가 오늘도 달린다. 나는 1001칸의 차량 중 어느 칸에 탑승한 것인가? 갑자기 어지럽다.
202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