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딸에 대하여_김혜진_200902

필85 2020. 9. 2. 08:05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혼인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해?"

 

2층짜리 낡은 주택 하나에 의지하며 요양보호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엄마, 30살이 넘어 시간강사로 여기저기서 발품을 팔다가 강사법 개정을 이유로 동성애자들을 잘라버린 대학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는 딸, 식당요리 보조일을 하며 딸과 함께 생활하다 전세를 마련하지 못해 엄마집으로 들어온 애,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는 세 주인공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는 자신에게 몇번이고 물어본다. 유일한 피붙이인 '딸애에게 걸었던 기대와 욕심, 가능성과 희망, 그런 것들을 버리고 또 버려도 또 다시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얼마나 앙상해지고 공허해져야 그것들은 마침내 나를 놓아줄까',하고. 엄마는 두렵다, 딸이 자신이 돌보고 있는 환자, '젠'처럼 될까봐.

 

"좁고 갑갑한 고독 속에서 늙어가는 사람, 젊은 날을 타인과 사회, 그런 거창한 것들에 낭비하고 이젠 모든 걸 소진한 다음 삶이 저물어 가는 것을 혼자 바라봐야 하는 딱하고 가련한 사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성소수자를 엄마가 정의하는 가족으로 인정해 줄 것인가하는 것이다. 엄마는 돈만 밝히는 요양원이 '젠'을 더이상 후원받을 수 없는 환자로 판단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시설로 보내는데 분개한다. 엄마는 젠을 집으로 모시고 온다.

 

피붙이가 아닌 젠을 보살피는 엄마의 행동은 (소설이 끝나는 시점은 아니었지만) 먼 훗날 딸과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다음은 '작가의 말'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엔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라는 말 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은 끈질기게 계속되는 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우리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둘이나 셋으로 나누어진 문제에 대하여 이해나 소통을 위해 대화하는 것은 처음부터 낭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지 않는다면 이해와 소통은 불가능하다.

 

엄마와 딸은 서로의 벽을 허물려고 하지만 평생을 딸의 행복을 위해 헌신한 엄마와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실천하려는 딸은 평행선을 달린다. 그럼에도 작가의 말처럼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

엄마는 딸의 시위 현장을 찾아가고 딸은 '젠'의 초상이 치르지는 병원을 찾아서 엄마 곁을 지킨다. 이해와 소통은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