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_베르너 하이젠베르크_211011
같은 물질은 계속해서 왜 똑같은 성질을 가지는가? 이 질문은 독일 청년 하이젠베르크를 양자역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부분과 전체>(서커스)는 이론물리학자이자 독일인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일은 왜 핵폭탄을 만들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책에 있다.
<부분과 전체>(서커스)는 하이젠베르크(1901-1976)의 자서전적인 책이다. 저자는 1919년부터 1965년까지의 일을 시간 순서대로 들려준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과학자들과의 대화로 채웠으며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첨가했다.
독자는 이 책을 두 가지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이론물리학, 그중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다. 또 다른 방향은 독일인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먼저 양자역학 이야기부터 해보자.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불확정성 이론’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자세히 밝혔다. 처음에는 수학자로서의 길을 모색하다가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경위도 소개한다. 저자는 왜 ‘같은 물질은 계속해서 똑같은 성질을 가지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이는 원자의 안정성에 기초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막 피어나기 시작한 이론물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저자는 덴마크 물리학자인 닐스 보어(1885-1962)와의 대화를 통해 이론물리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고 사고실험을 통해서 이론을 정립해나갔다.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은 실제의 실험 장치 없이 조건을 단순화시켜 머릿속으로 시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관찰하거나 측정이 불가능한 전자가 상자 속에 있다고 가정하고 이론적으로, 수학적으로 전자의 위치와 운동을 계산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고실험, 석학과의 대화, 자신과의 끈질긴 질문과 대답 끝에 과학사에 남을 연구성과를 남겼다. 노벨위원회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양자역학을 창안하고 이를 응용’한 공로를 인정하여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위원회에서는 양자역학을 ‘창안한 공로’를 하이젠베르크에게 돌린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발전과정을 <부분과 전체>에 오롯이 담았다.
두 번째는 독일인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의 이야기다. 저자는 전쟁을 겪어야 하는 독일인으로서의 고민도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정치와 역사에 대한 교훈’, ‘정치적 파국에서의 개인행동’, ‘정치적 분쟁과 과학적 논쟁’이라는 소제목만 봐도 그의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저자의 삶에서 두 번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의 결정은 전쟁 전, 히틀러의 광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다. 저자는 미국 앤 아버와 시카고의 대학에서 순회 강연을 할 기회를 가졌다. 이때 만난 많은 학자들은 독일을 떠나 미국에서 연구할 것을 권했다.
저자는 미국 여행 전, 독일의 이론물리학자인 막스 플랑크와 이 문제를 이미 상의한 적이 있었다. 막스 플랑크는 ‘우리는 목표를 불행이 지나간 뒤의 시기에 맞추어야’한다고 충고하면서 독일에 남아서 미래를 준비해 주기를 바랐다. 하이젠베르크가 독일에 남는다면, 위험하기도 하고 타협도 필요하고, 훗날 비난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으로 가지 않기를 원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막스 플랑크의 조언대로 다시 독일로 향했다.
두 번째 의사결정은 독일이 핵 폭탄을 개발하려고 했을 때다. 저자는 원자 에너지를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연구하는 ‘우라늄 클럽’에 징집 당했다. 연구자들은 핵분열을 이용한 폭탄제조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비용측면에서, 또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상부에 보고하였다. 연쇄반응에 대한 엄청난 위력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던 하이젠베르크는 핵폭탄 제조방법에 대하여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42년 6월 독일정부는 원자폭탄 제조실험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반해, 미국은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맨하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핵 폭탄을 제조하였고 두 도시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하이젠베르크는 ‘내가 그렇게도 잘 아는 미국의 원자물리학자들이 전력을 다해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믿기지 않았다’고 서술하였다.
나는 오래 전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 과정의 모든 것이 담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사이언스북스)라는 책을 읽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합심하여 전세를 뒤집는 무기를 만드는 동안 양자역학의 발원지이자 우수한 연구자를 보유한 독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내용으로 판단할 때 하이젠베르크는 나찌에 협력했다고 봐야 할까? 나는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으로서 저자의 모습과 도덕적, 정치적 책임감을 가진 연구자로서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을 뿐이다. 악을 행하는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이젠베르크의 책을 잡았으니 그의 대표적인 이론인 ‘불확정성 원리’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엄격하게 말하면 나는 그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책 속에는 ‘이해’에 관한 토론내용도 포함되었다. ‘이해’는 ‘통일적인 연관이 간단하고 수학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많은 것’을 ‘하나’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예측 능력은 이해의 결과라고 말한다. 나는 불확정성 원리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쳐야 할 것 같다.
하이젠베르크는 사고실험으로 안개상자 속의 전자궤도를 고민하는 가운데 불현듯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올랐다. ‘이론이 비로소 무엇을 관찰 할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충고에 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말을 되새기면서 산책한 후에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하이젠베르크는 안개상자 속에서 전자궤도를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해왔지만 진짜로 ‘우리가 관찰한 것은 전자궤도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자가 놓여 있는 ‘불확정적인 위치에 대한 불연속적인 결과’만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에서 한 전자가 대략적으로 주어진 위치에 놓여 있는 동시에, 대략적으로 주어진 속도를 갖는 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졌다. 나중에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으로 나는 ‘불확정성 원리’를 이해하였다. 확률로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미시세계의 원리와 현상이 거시세계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것에 대하여 ‘안다.’고 또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대략적으로, 확률적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하여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은 <부분과 전체>다. 왜 제목을 이렇게 정하였는지에 저자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힌트가 될 만한 구절을 발견하였다. 하이젠베르크는 미국의 핵 폭탄 제조를 언급하면서 ‘개개인은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결정적인 자리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고, 거기서 주어진 명령을 수행했던 것 뿐이야’이라고 말했다. 핵물리학자 개개인은 ‘부분’이고 명령을 내린 국가 또는 ‘발전과정 속 역사’는 ‘전체’라고 볼 수 있겠다.
뉴턴역학이 지배하는 기존의 과학집단(전체)과 치열한 논쟁과정에서, 히틀러의 광기에 지배당한 국가(전체)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이 책은 부분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가 전체의 일부로서 어떻게 ‘조화롭게’ 싸워왔는지를 보여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