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원자_이강영_211128
<불멸의 원자>(사이언스북스)는 이강영 작가가 과학문화 웹진 <크로스로드>에 연재한 글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작가가 기고한 글의 제목은 ‘페르미 솔루션’이었다. 책 표지사진도 엔리코 페르미(1901-1954)의 얼굴로 장식했다. 페르미는 1938년, 중성자에 의한 인공방사능 연구의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자가 페르미에게 반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저자는 최초로 완성된 원자폭탄 실험인 ‘트리니티’에서의 일화를 소개한다. 페르미는 폭발에서 16키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돌풍이 오기 전, 지나갈 때, 지나간 후, 세 번에 걸쳐 종이 조각을 떨어뜨렸다. 종이가 날아간 거리를 측정하여 폭탄의 규모를 추정했다고 한다. 천재다.
저자가 완전히 페르미에게 빠진 이유는 그의 우아함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우아함이란, ‘어려운 일을 전혀 힘을 안 들이는 것처럼 쉽게 하면서도 세심하고 뛰어나게 해낸다는 말’이다. 이강영 작가의 소개만으로도 53세의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엔리코 페르미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졌다.
<불멸의 원자>는 ‘필멸의 물리학자가 좇는 불멸의 꿈’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이 책은 ‘변하지 않는 원자’에 대한 이야기다. 형태와 상태를 바꿔가며 세포와 지구, 우주를 구성하면서 영원히 살아있는 원자에 대한 이야기다.
책의 초반에는 물리학에 낯선 독자를 위하여 원자의 구조에 대하여 설명한다. ‘입자전쟁’이라는 제목이 붙은 부분에서는 원자 구조를 밝히는 과정에서 일어난 대륙 간, 학자 간 경쟁과 대립을 재미있게 전개한다. 이와 함께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저자는 페르미, 하이젠베르크, 디랙, 에렌페스트, 로렌스, 폰 노이만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이룬 물리학의 성과와 인간적인 면까지 소개한다.
입자가속기라는 장치를 통해 새로 발견된 입자 중 내가 제일 흥미롭게 생각하는 입자가 있다. 바로 ‘중성미자’라고 불리는 입자다.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빛과 아예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양자역학의 세계가 매력 있다.
이 책을 통해 내게 특별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은 세 가지다. 불확정성의 원리와 이론의 중요성, 반입자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첫 번째는 불확정성의 원리다. 저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라고 한다. ‘그것은 실재의 문제, 인식의 문제와 같은 인간이 사고하는 한 항상 마주치게 되는 뿌리 깊은 문제들을 모두 건드린다.’고 강조한다.
나는 얼마 전 읽은 <부분과 전체>(서커스)라는 책에서 불확정성원리를 접한 적이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안개상자 속에서 전자궤도를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해왔지만 진짜로 ‘우리가 관찰한 것은 전자궤도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자가 놓여 있는 ‘불확정적인 위치에 대한 불연속적인 결과’만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에서 출발한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의 사고와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나도 이 이론을 되풀이하여 읽고 나서 바뀐 것이 있다. 나는 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현상에 대하여 ’A는 B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게 맞는지, 자신에게 한번 물어 본다.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해 준 이론이다.
두 번째는 이론의 중요성이다. 1926년 스물다섯 살의 청년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이 학회를 마치고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다.
“관찰할 수 있는 양만을 가지고 이론을 세우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관찰 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입니다.”
하이젠베르크가 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궤도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에게 불현듯 아인슈타인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이론을 먼저 세우고 관찰하라, 아인슈타인의 말이 불확정성 원리의 탄생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양자역학의 세계가 펼쳐졌다. 양자역학을 창안했다는 공로로 하이젠베르크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론은 어떻게 나오는가?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다. 모든 것에 대하여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특정한 부분에서는 이론을 갖추지 않으면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조심스럽고 신중해진다.
세 번째는 반입자의 존재다. 작가는 ‘반입자’는 입자와 질량은 똑같고 전하뿐 아니라 모든 물리적 성질이 정반대인 상태라고 한다.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게 되면 모든 물리적 성질이 서로 상쇄되고 두 입자는 소멸하게 된다. 다만 질량은 상쇄되지 않고 남아서 복사에너지가 된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미시 세계의 현상을 거시 세계로 확장해서 생각해보자. 어느 날 ‘반짝’ 빛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은 물질이 반물질을 만났던 것이고, ‘짠’하고 느닷없이 나타난 것은 물질과 반물질이 분리되면서 대칭이 깨져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하고 상상해본다. 신비로운 일이긴 하지만 우주에는 늘 상 있는 일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이제 우주가 반드시 3차원 공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른 차원의 세계는 물리학자의 탐구 대상이 되었다. 어느 날 다른 차원에 있는 반물질인 ‘또 다른 나’를 만나기를 상상해본다. 불멸의 ‘원자’라지만 우주 관점에서는 인간도 불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