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_우타노 쇼고_210301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표지만 보면 청춘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본격 추리소설이다. 저자 ‘우타노 쇼고’는 이 책으로 2004년 일본추리작가협회 상을 수상했으며 미스터리 소설분야 1위에 올랐다. (아래 글에는 소설의 결말 일부가 포함되어 있음.)
주인공인 나루세는 헬스클럽에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어떤 때는 롯본기에서 경비원으로, 어떤 때는 컴퓨터 교실의 강사로, 가끔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탐정으로 활약한 나루세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이끌고 있는 사건은 두 건이다. 하나는 야쿠자 살인사건이다. 19살의 나루세가 처음으로 탐정사무소에서 일할 때 맡았던 사건으로 두 야쿠자 조직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현재시점의 사건이다. 교통사고로 위장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먼저, 야쿠자 살인사건을 들여다보자. 마약을 배달하던 조직원이 처참하게 살해되자 상대 조직을 의심하는 야쿠자의 간부가 나루세를 반대편 조직에 스파이로 잠입 시킨다. 나루세는 졸지에 초보 야쿠자가 되어버렸다. 마약을 운반하면서 살인사건과 관련된 조사를 이어가던 중, 함께 동거하던 중간 계급의 야쿠자가 살해당했다. 그런데 사건의 경위와 살인 방법이 지난번과 똑 같았다. 마약을 운반하던 중 탈취사건이 일어나고 집에 돌아온 조직원은 그날 배를 난자당했다.
나루세는 혼란에 빠졌다. 상대 조직을 의심했는데 같은 사건이 여기서도 일어난 것이다.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찾아간 화장장에서 가루를 입에 넣는 사람을 보고 나루세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두 사건 모두 내부자의 소행이었다, 나루세의 지혜로 살인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나루세는 짝 사랑하던 여인을 잃게 되었다. 선배 야쿠자의 연인이었던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충격으로 자살했다.
두 번째 사건은 복잡하다. 나루세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노인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하면서 알아봐 주기를 부탁받는다. 죽은 노인은 ‘호라이 클럽’으로부터 값비싼 물건들을 구입한 고객이었다. 호라이 클럽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건강 설명회를 개최하고 깃털이불, 자기 매트리스, 알칼리 이온수를 강매하였다. 돈이 모자란 사람에게는 불법 대출을 알선하고 나중에는 생명보험에 들게 한다. 최후에는 살인을 저질러 보험금을 수령하는 악랄한 집단이다.
두 번째 사건에는 한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사쿠라’는 감당 못할 빚을 지고 호라이 클럽에서 자행하는 불법행위의 대리자가 되어버린 여성이다. 절망감으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쿠라가 지하철역에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나루세가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은 나루세와 사쿠라의 만남과 사랑이야기, 야쿠자 살인사건, 호라이 클럽 수사,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가 챕터를 바꿔가며 들려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자칫하면 스토리가 헷갈릴 수 있지만 소설 구성과 저자의 필력이 단단해서 독자들은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나는 나흘 만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니 추리와 반전의 재미를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장을 넘기던 날, 나는 저자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는 주인공이 30대 미혼 남자일 거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나루세는 컴퓨터 교실 강사를 하고, 엑스트라 배우로도 활약하였다. 헬스클럽에 같이 다니던 후배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여동생은 아이돌 그룹을 쫒아 다니는 여성이었다. 나는 이런 직업과 행동을 왜 젊은 사람의 것이라고만 생각했을까?
“나는 가끔 스무 살의 나와 일흔 살의 내가 뭐가 다른지 생각해본다. 육체적으로는 분명 차이가 있다.(생략) 여전히 지기 싫어해 허세를 부리고, 차를 좋아하고 괴로울 때는 술에 의지한다.”
내가 주인공의 나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속았다기보다는 70대의 생각과 행동의 묘사가 20대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이 책은 비록 ‘추리작가협회 상’을 받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은 사람에게는 흥미진진한 추리와 반전의 묘미를 주지만 인생 후반부를 맞이한 사람에게는 다른 의미로 읽힌다. 책 제목을 한 번 더 읽어보자.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벚꽃이 지면 모든 게 끝나고 그대를 그리워할 일만 남았다는 의미로 읽었다면 소설 속 다음 문장을 한 번 더 읽어봐야 한다.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기껏해야 나뭇잎이 푸른 5월까지야. 하지만 그 뒤에도 벚나무는 살아있어. 지금도 짙은 초록색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 그리고 이제 얼마 후엔 단풍이 들어”
5월이 지나도 벚꽃 나무는 초록이 물들고 단풍이 물들 계절이 남았다. 저자는 벚나무 잎은 찬바람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에도 벚나무는 살아있다.
3월이다. 벚꽃 보다는 초록과 단풍을 뽐 낼 벚꽃나무가 기다려진다. 올해는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중국 소설가 임어당은 ‘인생의 황금시대는 흘러가버린 무지한 젊은 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미래에 있다(소설 마지막 페이지 글에서 인용).’고 하였다. 나의 ‘늙어가는 미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