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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냄새에 관한 영화다. 동익(이선균)이 코를 틀어막았을 때, 기택(송강호)에게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필85 2022. 10. 10. 23:31

인간이 어머니 뱃속을 박차고 나올 때부터 완벽하게 그 기능을 장착하고 나온 것이 있다. 바로 후각이다. 다른 감각은 서서히 완성되는 것에 비해 후각은 처음부터 기능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갓난아이의 생명보존에 후각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어머니를 시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해도 냄새로 어머니를 구별하고 누구에게 젖을 달라고 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다.

 

후각이 가장 원천적인 감각임에도 불구하고 미각이나 촉각에 비해 천대받아왔다. 철학자 칸트는 '유기체의 감각 중 가장 천박하면서 없어도 되는 감각'으로 후각을 뽑았다. 2011년 미국의 한 광고회사는 디지털기기와 후각 중 하나를 포기한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16~22살 응답자 중 절반이상이 후각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참고: YTN사이언스).

 

과연 후각은 디지털기기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필요없는 감각일까? 그렇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이 후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후각을 잃는 것과 동시에 미각을 잃고 삶의 의욕까지 바닥에 닿은 사람도 있다.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해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는 회복되었지만 롱 코비드 상황으로 가면서 한번 손상된 후각을 인지하는 뇌세포의 손상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냄새와 관련된 영화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각색한 <향수>(2007)가 유명하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최고로 꼽는다.

 

<기생충>(2019)은 한마디로 냄새에 관한 영화다.

 

공생할 수 없는 기택(송강호) 가족과 동익(이선균) 가족은 철저하게 구분된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이 구별된다. 사는 곳으로 말하자면, 동익의 집은 숨을 헐떡거리며 경사를 올라가야 문을 열 수 있는 대저택이고 기택의 집은 반지하다. 기택의 집 창문에 술주정뱅이가 실례를 하기도 하고 창문을 열어두면 소독 연기가 그대로 가라앉는다. 

 

잘 나가는 IT기업의 대표인 동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선을 넘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운전기사로서의 기택의 행동과 말은 선을 넘지 않지만 기택의 냄새는 그렇지 못하다. 냄새는 경계 없이 운전석과 뒷좌석을 넘나 든다. 사실 기택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매일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을 입어도 자신의 체취를 없앨 수는 없다. 마치 가난이 그의 삶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도대체 기택에게는 어떤 냄새가 나는 것일까? 햇볕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반지하 주택의 빨래는 아무리 섬유유연제를 쓴다한들 조금만 땀이 배어도 원래의 냄새를 풍긴다. 그 냄새란 오래된 행주 냄새나 입에서 나는 냄새, 청소하지 않은 에어컨 냄새, 여름날 하수구 냄새와 비슷할 것이다. 문제는 함께 사는 사는 사람들, 즉 기택의 가족은 이 냄새를 맡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동익의 아들 다송(정현준)이 킁킁 거리며 기택과 충숙(장혜진)이 같은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하지만 동익과 아내 연교(조여정)는 이를 눈치재지 못한다.

 

기택이 살인을 하게 되는 것도 냄새때문이다. 동익이 냄새 때문에 코를 틀어막는 순간, 기택에게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다.

 

그 모든 일이란 세 가지 일을 말한다. 첫 번째는 '거울 뉴런'의 작동이다. '거울 뉴런'이란 타인의 행동을 보고 있기만 해도 그 자신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활성화되는 뇌의 신경세포를 말한다. 거울 뉴런의 도움으로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활동과 언어를 모방하고 학습할 수 있다. 동익이 근세(박명훈)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맡지 않으려고 코를 잡는 순간 기택의 뉴런 세포는 후각 세포를 자극하게 되었다.

 

두 번째 기택에게 일어난 일은 기택의 후각 세포가 이와 연결된 '해마'를 자극한 것이다. 해마는 뇌의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기억을 저장하고 상기시키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기택의 삶에서 불러들인 기억은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가진 자들에게 굽신거리며 살아왔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어둡고 축축한, 냄새나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후각 세포는 신경세포를 통하여 뇌의 해마와 편도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세 번째로 기택에게 일어난 일은 후각 세포가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를 건드린 것이다. 너 같은 무리와는 호흡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동익이 자신의 코를 막았을때 기택은 동익을 더 이상 숨 쉬지 못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동안의 모든 감정을 칼 끝에 실었다.

 

두 번째 보는 <기생충>은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편하게 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보는 내내 내 몸에도 냄새가 나지 않나하고 내 옷에 연신 코를 댔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하여 책임질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