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니즈보다는 완츠를 파악하라 그리고 감성적으로 만족시켜라, 디자이너가 만든 책

필85 2023. 1. 23. 23:10

https://youtu.be/BVAtHpCltls

 

 

라면집도 디자이너가 하면 다르다.’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본업을 접고 라면집을 시작한 줄 알았습니다. ‘김밥 일번지와는 달리 독특하게 내부를 꾸미고 레시피도 차별화하여 대박을 터트린 식당을 운영한 줄 알았습니다. 그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 짚었습니다. 저자는 영국에서 디자인경영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부산에서 정년이 보장된 교수로 자리잡았습니다. 학생을 지도하면서 기업에서 제품 디자인 기획을 하였습니다. 주방 기구에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입힌 양면팬1시간 만에 가장 많이 팔려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합니다. 중년이 되어서 안정된 직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라면집은 아니었습니다. 5천만 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매출 백억 원이 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세계 1위 제품을 만들기까지 갈고 닦아온 디자이너의 통찰력에 대해 말해줍니다. 저자는 디자이너는 제품과 서비스의 본질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객의 니즈(Needs)와 완츠(Wants)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니즈는 기능이 좋으면 충족시킬 수 있으며 이런 제품은 널렸습니다. 디자이너라면 니즈 밑에 깔린 욕구를 파악하고 감성적으로 만족시켜야 합니다. 이때 디자이너의 감각이 필요합니다. 이즈음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자는 디자인이란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디자이너의 핵심 능력은 아이디어, 가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디자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자는 단순히 많이 보기만 할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보고, 느끼면서 봐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책 제목에 라면집 이야기를 괜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자의 제자인 송보라 셰프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열망에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오기도 한 장학생이었습니다. 송보라는 졸업 후 요리를 접하고, 디자이너가 요리하면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자신의 요리에 새로운 가치를 더했습니다. 그림으로, 요리로 표현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미셀링3 레스토랑에 전시된 송보라 셰프의 <자연의 선물> 작품을 보고 있으면 창의적이면서 감각적인 색과 형태에 빠지게 됩니다.

 

  제가 저자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자는 부산에서 디자이너의 감각을 잘 살린 유명한 곳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부산시청 앞 샌드위치가 유명한 후스 카페‘, 독일의 유명한 산업디자이너 디터 잡스의 제품을 접할 수 있는 까페 그린노마드‘, 가내 수공업 양식당을 표방하는 이탈리안 식당 비토’, 우아한 유럽풍 인테리어를 선보인 까페 에베즈’, 철강 산업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꾸민 복합 문화공간 F1963.

 

저자가 소개한 매력적인 장소를 별도로 저장해 두었습니다. 저는 블로그에 가본라는 카테고리에 다녀온 곳의 느낌을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저자가 소개해 준 곳을 가보려고 합니다. 운영자의 돋보이는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어떤 가치를 더했는지 어떻게 표현했는지 제대로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보아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핵심은 차별화와 어울림입니다. 저는 디자이너의 전략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확실하게 차별화시키거나 주변과 잘 어울리는 어울림의 가치를 더 하는 것입니다. 차별화와 어울림, 어느 쪽을 선택할지 정답은 없습니다. 컨셉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것입니다. ‘어울림 안에서 차별화하거나 차별화 속 어울림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어울림으로 약간 기운 것 같습니다. 저자는 튀는디자인이 자연스러운디자인에 자리를 내주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고 합니다. 저는 저자가 운영하는 카페 프리젠트건물을 보면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푸른 바다와 광안대교가 시원하게 내려 보이는 곳에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짓고 싶은 욕망을 눌렀습니다. 주변에 먼저 자리를 잡은 교회와 빌라가 사용한 건축 자재와 톤으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오래된 회색빛 벽돌담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프리젠트 간판을 발견하고 건물로 들어가면, 건물이 나를 받아주는 느낌입니다. 1층에서 커피와 빵을 주문하고 장미와 백합, 튤립의 향을 맡습니다. 진열된 책도 이리저리 넘겨봅니다. 까페에서 꽃집과 서점을 운영합니다.

 

2층에 올라서면 통유리를 통해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저를 맞이합니다. 공간은 아늑하고 넓습니다. 창가 쪽에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거나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소파가 마련되었습니다. 야외에도 편한 의자가 있어 광안리 바다와 금련산의 풍경과 향을 온몸에 담을 수 있습니다.

 

  책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다 읽었을 때, 저는 조화로움과 편안함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저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저를 가벼운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원고 집필을 끝내고……라는 조그만 글씨가 보이는 사진은 저자가 넥타이를 푸는 장면입니다. 흑백사진입니다.

 

희끗희끗한 머리, 안경테에 가렸지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을 눈동자, 사선 방향으로 내리꽂는 턱,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이미지는 넥타이를 잡은 손입니다. 손 등을 타고 흐르는 핏줄은 포즈를 취한 보디빌더의 근육처럼 울퉁불퉁합니다. 예사로운 사진이 아닙니다. 조화로움을 강조한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포즈와 각도, 시선, 기획을 담은 장면입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 책 제목이 라면집도 디자이너가 하면 다르다.’였지. 책도 디자이너가 만드니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