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제안이다_지적자본론_마스다 무네아끼
모든 소비와 거래 활동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플랫폼 소비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을 갖추기 위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인다면 어느 누가 지지해 주겠는가?
<지적자본론>의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 이야기다. 저자는 새로운 개념을 접목한 상업시설과 제품을 개발하였다. 저자는 1983년 ‘츠타야서점 히라카타점’을 연 이후, 일본 전국에 1,400여 곳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2003년에는 업종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T포인트’ 서비스를 출시하여 5천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그에게는 특이한 사업 경력이 있다. 2013년에 사가현 다케오시의 시립도서관 운영을 맡았다. 시장이 직접 저자에게 부탁한 것이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아이디어와 타케오 시장의 빠른 실천력이 합쳐져서 개관 13개월 만에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방문하여 화제가 되었다. 저자의 아이디어와 철학이 궁금하다.
<지적자본론>은 서점과 도서관, 상업시설에 변혁을 일으킨 동력이 무엇인지, 혁신을 일으킨 저자의 생각과 행동의 밑바닥에는 어떤 철학이 있는지 잘 풀어놓은 글이다. 책의 부제,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가 말해주듯이 책의 핵심은 ‘디자인’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제안하는 능력’이다. 저자는 디자인을 가시화하는 행위라고 하면서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생각에 형태를 부여하여 고객에게 제안하는 작업이 디자인’이라고 한다. 디자인은 결국 ‘제안’과 같은 말이라고 강조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저자는 제품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단계를 세 단계(스테이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제품이 소비자에게 기능을 제공하는 단계다. 컵은 물을 담고, 접시는 음식을 담고, 시계는 시간을 표시한다. 두 번째는 기능을 만족시킨 제품이 ‘덤’으로서 디자인을 제공하는 단계다. 이때의 디자인은 부가가치를 제공한다. 미술가의 그림을 새긴 커피잔과 접시, 금장식을 입힌 유명 브랜드 시계가 그 예다.
마지막 단계에서 디자인은 본질적 가치를 제공한다. 밀봉성이 높고 세련된 디자인을 가진 텀블러 글라스라면 그것을 선택한 사람에게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도록 제안할 수 있어야 하고, 섬세한 의장이 들어간 와인 잔이라면 때때로 고급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디자인’, 즉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개념은 디자이너를 위한 정의였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철저하게 소비자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제안을 할 수 있어야 디자인된 제품과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떻게 응용했는지 살펴보자. 서점은 기능적으로는 책을 거래하는 곳이다. 서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문학, 철학, 경영, 여행, 베스트셀러 코너 등으로 배열되어 있다. 저자는 서점을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글이 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츠타야 서점은 잡화점, 공원, 커피숍, 도서관, 놀이터다.
100년간 이어온 도서 분류법도 바꿨다. 파리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라면 관광 안내뿐만 아니라, 루브르 박물관 예술품과 프랑스 요리, 유럽의 철학과 문화까지 즐길 수 있게 제안하는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를 ‘고도의 편집작업’이라고 부른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디자인’을 왜 ‘제안’이라고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제품과 서비스를 사들일 때 내게 무엇을 제안하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언뜻 보기에는 내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나를 중독시키거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오프라인 서점을 잘 꾸미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일 말이다. 독자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쉽고 편하게 책을 구매할 수 있는데 굳이 서점까지 갈까? 이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이 ‘디자인과 기획’이다. 인터넷 소비 시대에 어떻게 해야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을 창출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저자는 고민 끝에 답을 찾았다. 저자가 찾은 가치는 책을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즉시성’과 책을 만지고 활자를 볼 수 있는 ‘직접성’이다. 한 가지 더 있다. ‘편안함’이다. 물리적인 장소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편안함, 그것은 산들바람이나 따스한 햇볕, 가벼운 소음, 코를 스치는 재스민 향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책 제목인 ‘지적자본’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동일한 자료를 보고 동일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에 따라 기획 능력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자의 대답은 미지근하였다. 저자는 ‘기획을 일의 일부로만 받아들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나는 책 속 다른 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저자는 소비사회가 되면 기업도 돈만으로는, 즉 ‘재무자본’만 가지고는 ‘제안’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앞으로 필요한 것이 ‘지적자본’이라고 말한다. 지적자본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가, 에 따라 그 회사의 사활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개인으로 초점을 맞춰보자. 사람에 따라 기획 능력이 차이가 나는 것은 지적자본의 양과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적자본은 어떻게 갖춰지는가? 많이 보고, 듣고, 읽어야 한다. 단순히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보고 들어야 한다. 책을 읽었다면 정리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
이 책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 내가 사용하는 제품과 디자인이 내게 무엇을 제안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지식이 자본으로 축적되고 있는지도 한번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