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쓴 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지? 쌀농사 재촉하는 봄비를 보며 생각한다

필85 2023. 4. 16. 12:45

주말에 서울 갈 일이 있어 KTX 창가에 자리 잡았다. 나는 기차를 탈 일이 있으면 창가를 택한다. 가까이 또는 먼 거리에 펼쳐진 도시와 마을, 산의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KTX를 타면서 바라보는 풍경 중 최고는 해질녘 낙동강 풍경이다. 서울에서 볼 일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6시 부근이면 좋다. 대구를 지나면 오른쪽에 낙동강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 지는 해의 너그러움을 품은 강물은 내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강변에 자리잡은 작은 집이라도 눈에 들어오면 그 집에 내 집인 것 같다.

 

창밖에 비치는 풍경은 늘 새롭다(출처: pixabay)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누군가가 자꾸 창문에 빗금을 치고 있다. 봄비다. 오늘 내리는 봄비는 선물이다. 요 며칠 산불이 전국을 벌겋게 달구었다. 밤낮 구분없이 불을 끄느라 뛰어다니거나 산으로, 논밭으로 순찰을 다녔던 공무원에게는 천금보다 귀한 선물이다. 봄비는 불씨를 완전히 잡아먹고 건조한 낙엽을 촉촉이 적셔 줄 것이다. 강원도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이제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겠다.

 

주말에 시원하게 전국에 비가 내렸다(출처: pixabay)

 

 

  봄비를 보니 지금쯤 모판을 꾸릴 아버지도 떠오른다. 짧은 겨울을 끝내고 이제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벼농사의 시작은 모를 키우는 일이다. 모를 키우는 모판을 차릴려면 논에 찰박하게 물이 들어차야 하는데 봄비가 맞춰 내렸다.

 

오늘 저녁, 시골에 계신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농사일을 여쭤보았다. 요즘 모내기는 이미 자란 '모'를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말씀하셨다. 농사일 그만하시라고 매년 말씀 드려도 '알았다.' 말만 하시고 일을 하신다. 직접 안 하시고 모든 일은 사람을 써서 한다고 하시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겠는가?

 

사람을 부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농사는 잔잔하게 손 가는 일이 많다. 논에 물을 대기위해, 벼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매일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한다. 논두렁이나 자투리 땅에 뭐라도 심어야 한다. 아버지가 벼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작은 규모지만 논을 일구어 아들에게 쌀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가을에도 쌀을 내주시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어셨다. 새 쌀로 지은 밥 맛이 여느 해와 달랐다.

 

"아버지, 이번 쌀은 맛이 좀 달라요. 쌀이 찰지고 고소한 맛이 나요. 반찬이 없어도 한 그릇 먹겠는데요."

"그래? 품종을 좋은 것으로 골라심었는데. 맛이 있다니 다행이다."

 

아버지의 자부심이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나는 아버님이 흡족하시도록 밥 맛이 최고라고 한번 더 추켜세웠다. 시골에 계시면 몸을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건강에 무리만 가지 않도록 농사 짓기를 바랄 뿐이다.

 

잔 손이 많이 가는 벼농사(출처: pixabay)

 

  나는 밥 벌이하기 위해 매일 출근하지만 정작 밥은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신다. (물론 매달 생활비를 보내 드리고 있다.) 밥만 먹고살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인가? 생각에 따라 삶의 태도나 행동도 바뀔 듯한데, 쉽게 답을 내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