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 축제에서 만난 귀한 분들
아내가 10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축제를 날짜순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다를까 일정표를 내게 한 번 쭉 불러주더니 내일은 자갈치라고 좌표를 설정해 줬다. 안 가고 배길 자신이 없었다.
주차장이 복잡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냥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아들로부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집 나가고 나서는 만나기 어려운 귀한 분이다. 그냥 안부전화라고 했다. 잘 있지? 잘 있어, 가볍게 통화를 끝냈다.
축제장은 입구부터 웅성웅성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설치물은 노래자랑 무대였다. 우리나라사람들의 노래방 본능은 어디서든 말릴 수 없다. 도로에 텐트를 설치하고 노상에서 모듬회, 파전, 전복구이, 새우구이, 해물을 판매했다.
부산사람 점심 먹으러 여기 다 왔나?
아내와 나도 비집고 들어가서 모듬회를 시켰다. 한 접시 2만 원이면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아내는 소주를 조금 곁들였다. 두 사람의 점심 식사로는 양이 모자랐다. 아내는 다른 텐트에 가서 파전이나 곰장어를 한 접시 더 하자면서 자리를 비웠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아내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들어선 차를 보고 '여기 왜 차가 들어오노!'라며 핀잔을 줬다. 운전석 유리 창문이 스르르 내리면서 차 안에 두 여성이 우리를 보고 인사를 했다. 누구지? 뒤이어 뒷 좌석 창문을 열렸다. 얼굴을 빼꼼 내 밀고 인사하는 청년이 눈에 익은 놈이다. 아들이다.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자갈치 축제에 놀러온 것이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두어 번 봤지만 그녀의 엄마는 처음이었다. 선채로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바로 지나칠 수는 없어서 주차하고 다시 만났다. 반갑지만 어색한 자리였다. 파전과 회, 전복 구이를 안주로 약간의 호들갑을 떨었다. 축제행사장이라 떠들썩한 분위리가 어색함을 덜었다.
접시가 비워지자 우리 일행은 모두 일어섰다. 나와 아내는 한 바퀴를 더 돌아보기로 하고 아들을 포함 일행 세 명은 반대방으로 갔다. 아내와 나는 시장 건물 뒤쪽에 놀이마당으로 펼쳐졌다. 가장 많은 시민들이 모인 곳은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였다. 참가비를 내고 한 마리 잡으면 바로 회를 쳐서 먹게 해 준다고 하니 아주 이득이다. 한 군데 더 들르기로 했다. 곰장어 한 접시 더했다.
두고두고 이야기 될 것 같다. 장래에 며느리가 될 사람의 남편을 어시장 축제에서 만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