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가의 구름_위성욱 시인 등단 계간지_시와 반시
아는 사람이 동인지에서 신인상을 받고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와 반시>(The Poetry and Anti Poetry) ‘2022년 봄’호 계간지를 통해서입니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시인의 삶을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위성욱 시인은 당선 소감에서 ‘가보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있었다고 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은 어떤 아름다움’을 찾겠다고 말했습니다.
가벼운 식사자리에서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과 시인의 길로 접어든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등단 시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 계간지를 접하기는 처음입니다. <시와 반시>, 계간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읽기 쉽지 않은 시들이 담겼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시와 시평만 가득 읽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달랐습니다. 세계지리 소개, 특별기고, 문학 이슈 분석, 시인의 그림, 시집 리뷰 등 시 말고도 읽을거리가 많았습니다.
‘대구문학의 현장 점검’이라는 창간30주년 기획 편에서는 동시를 소개하였습니다. <시와 반시>의 근거지는 대구입니다. 난해한 현대시를 읽다가 동시를 읽게 되니, 미세먼지가 날아가고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찾아왔습니다. 동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누구나 / 한 번쯤은 / 숨고 싶을 때가 있는 거야. // 오늘밤 / 저 달님이 그래. // 눈치 빠른 / 지구 아저씨가 / 슬그머니 앞을 가려 주고 있네.
(<개기월식>(최진) 전문)
시인들이 자신의 문학청년시절 읽은 시를 소개하는 기획도 인상 깊습니다. 복효근, 천양희, 권주열 등 6명의 시인은 자신의 문청시절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문청시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농부 없는 밥상이란 상상할 수 없듯이, 문청 없이는 문단 또한 존립할 수 없다. 힘들었던 문청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다시 시를 선택해 온갖 고난을 감수할 것이다. 시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시인의 숭고함이 폐부를 찔렀습니다.
계간지를 읽다 보니‘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조금 해결되었습니다.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김경엽 시인은 ‘시는 감정의 낭자한 배설이 아닌 건조하고 절제된 표현미학의 산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시인의 경험이 담겼다고 생각하니 시가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시인은 가치가 있는 경험을 구구절절 말하는 게 아니라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신인상을 받은 위성욱 시인의 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등단 시 5편 중 가장 인상 깊은 시는 <수돗가의 구름>입니다. 다음은 시의 일부입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흰 식탁에 / 오늘도 잘 익은 고등어가 올라오고 / 서로의 젓가락질로 조각조각 나눠질 때 / 누군가 먼 곳에 있는 눈을 빼 / 자신의 눈인 것처럼 얼른 집어넣었다’라는 구절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듯 경이롭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소녀라고 믿었던 6세의 달리>라는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네모반듯하게 잘려진 바다를 살짝 들어 올려, 수면 아래 잠자고 있는 개를 바라보는 소녀를 그린 그림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한 시도 있습니다. <턴테이블 연대기B>라는 시입니다. ‘누구에게나 뒷면이라는 것은 있어요“로 시작합니다. 시는 괄호가 있는 문장과 없는 문장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구조입니다. 다 자란 손은 손톱을 떠나고, 다 자란 밤은 달을 떠나고, 책은 글을 떠납니다. 하늘이 땅을 떠난 후, 마침내 신이 인간을 떠나는 경지에 이릅니다. 저는 구조의 참신함과 생각의 기발함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위성욱 시인은 당선 소감에서 ’나는 무엇을 또 얻겠다고 이 무용한 일에 발을 내민 걸까?‘하고 되묻습니다. 저는 시인의 현대시를 머리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고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절제된 표현으로 독자에게 영감을 주었으니, 그가 하는 일이 무용한 일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위성욱 시인의 손끝에서 다 자란 시는 시인을 떠났습니다. 제게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