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누군가 나 때문에 불행해졌을 때_로기완을 만났다

필85 2024. 3. 24. 21:55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김 작가는 탈북민 기사를 보던 중 이니셜로만 표시된 한 남성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저 이니셜 L’로 불리던 로기완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춥고 낯선 땅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려고 했을까요? 김작가는 브뤼셀로 향했습니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이야기입니다. 출판사는 올해 표지를 바꿔 다시 책을 펴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두 번째 읽었습니다.

 

  김 작가는 2010, 로기완이 잠시 머물렀던 호스텔, 난민 신청을 거절당했던 대사관, 잠을 청해야 했던 화장실, 행인에게 자비심을 호소한 길바닥에서 그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탈북민을 도와주는 이라는 전직 의사로부터 받은 로기완의 일기장이 안내서 역할을 했습니다. 로기완의 행적을 쫓아가는 여정은 김 작가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소설에는 세 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합니다. 먼저, 화자인 김 작가는 불우한 환경의 환자를 소개하고 후원을 받게 만드는 방송프로그램의 작가입니다. 출연자의 촬영 일자를 늦춤으로써 출연자가 가진 종양이 악성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후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였으나 환자는 목숨을 건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김 작가는 수술 전에 사표를 내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로기완,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연길에 머물렀지만, 공안의 감시 때문에 숨어 지냈습니다. 궂은일로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로기완은 어머니의 시신을 판 돈으로 항공권과 브로커 비용을 지불하고 650유로를 손에 쥐었습니다. 벨기에 대사관에 난민 신청을 하였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입니다. 난민 심사국에서 조선족과 탈북민을 구별하는 보조원 역할을 하면서 인도적인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안락사를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 그는 의사였습니다.

 

세 명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누군가 나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사는 것, 그것뿐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문장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자는 로기완의 행적을 따라다니면서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의 뒷부분에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는 로기완이 앉아 있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

 

저자는 어떻게 이런 결론이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로기완이 머물렀던 공간이 작가에게 말을 겁니다. 등장인물과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 상처를 내보이고 안아줍니다.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일기장에 쓰면서 자신을 설득하고 끝내는 독자를 이해하게 만듭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장르가 바로 소설입니다.

 

  저자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사회파 작가인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소설은 시대와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는장르가 소설이며 이것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누군가 나 때문에 불행해졌을 때, 어떤 위로의 말과 행동도 그에게 도달하지 않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며 자신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https://youtu.be/cO-60fHatNw?si=0JXQWbkfWCPxLD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