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나는 이 책을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읽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밤의 한기를 느끼자 손을 뻗어 옆에서 자는 아이를 더듬었다. 밤은 어둠 이상으로 어두웠고 낮은 하루가 다르게 잿빛이 짙어졌다.”
불덩어리로 변했던 지구가 폐허가 된 뒤에도 살아남은 남자와 소년은 길을 떠난다. 그들은 남쪽으로 쉼없는 여행을 하면서 굶주림과 갈증, 추위와 싸운다. 두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로부터 약탈의 위협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세상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년의 엄마도 처음에는 같이 길을 나섰지만 절망뿐인 그들의 여행에서 이탈했다.
이 소설은 대재앙 이후 인간을 구원할 성서(聖書)를 지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 <일라이>(2010년)에서의 지구의 모습과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인간의 탐욕을 조합한 것처럼 읽힌다.
이 책은 지구 멸망이후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부분을 리얼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미래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지독하게 구체적이다. 소설 <로드>의 또 다른 매력은 생명과 희망이 없는 세계에 어울리는 절제된 문장들이다.
<로드>를 읽고 내가 생각한 것은 두 가지이다. 현재 내가 느끼는 약간의 허기, 목마름, 더위 같은 사소한 불편과 운전 중 갑자기 끼어드는 차의 위협에 대한 조그만 불평은 대재앙 이후 미래의 소년에게 얼마나 큰 사치인가,하는 것이 첫 번째 생각이다.
또 하나는 인간은 결코 멸종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내게 생겼다. 어떠한 형태의 파멸이 와도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먼 훗날의 소년에게 전해 줄 것이다.
<로드>는 여름에 읽으면 좋을 책이다. 책의 내용이 주는 서늘함에 더위가 가실 것이다.
- 201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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