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632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인생은 시간이다.”“인생은 여행이다.”“나는 내 인생을 늘 푸른 바다라고 생각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비채)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시인의 산문집은 마치 시집처럼 읽힙니다. 생각과 문장 흐름에 막힘이 없습니다. 문장을 읽노라면 영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은유와 상징이 정곡을 찌릅니다.  저는 문학적인 취향을 가진 분이 가벼운 책을 읽고 싶다고 하시면 ‘시인이 쓴’ 산문집을 권합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 고르라면 문정희 시인의 문학의 도끼로 네 삶을 깨워라>, 이문재 시인의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허수경 시인의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정호승 시인이 자신의 작품 70여 편을 소개하면서 시의 중심 생각과 소재에 얽힌 사연을 ..

읽은知 2024.07.07

문학의 힘_숨결이 바람 될 때

“서른여섯 살에 나는 정상에 올랐다. 드디어 약속의 땅이 눈앞에 보였다. (생략) 이제 주말 휴가도 떠날 수 있다. 멋진 보트에 루시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태우고서”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면서 수술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박사 후 연구원(Post-Doc)으로 활동하면서 신경학회로부터 최우수 연구상도 수상하였습니다. 임상의사로서의 명성과 함께 과학자 의사의 역량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서로 모셔갈 인재였습니다.  탄탄대로를 눈앞에 둔 그에게 극심한 가슴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며칠 사이 몸무게가 13kg이나 빠졌습니다. 좀 쉬면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동창 모임에 참석하기로 하고 휴가를 냈습니다. 몸이 뻣뻣해질 정도의 허리통증으로 공항 대기실 의자에 ..

읽은知 2024.06.24

누구라도 배우겠구나_초정리 편지

초정리 편지>는 부산교대 앞, ‘책과 아이들’이라는 서점에서 아는 분이 제게 선물해준 책입니다. 몇 달 동안, 내 책상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드디어 내 손에 붙잡혔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짜임새가 촘촘하고 던져주는 의미가 깊습니다. 인연, 가족애, 우정, 시기와 질투, 용서와 화해, 남녀 간의 사랑과 더 넓은 의미의 사랑까지 200페이지에 담겼습니다. 큰 글씨에 그림도 있어 2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쉽고 편하게 읽히는 소설 같은 느낌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장운’이라고 하는 산골 소년입니다. 장운은 초정리 약수에 쉬러 온 어느 선비로부터 글을 배우고 익혀, 친구와 이웃, 자신의 일터에서 함께 돌을 다듬는 일꾼들에게까지 글을 가르칩니다. 장운은 홀아버지의 약값으로..

읽은知 2024.06.16

00이 없었다면 메이지 유신은 실패_조용한 혁명

"이 책은 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서구 열강들의 군사적, 경제적인 침략에 맞서 자립적 근대화에 성공한 근대 일본의 역사를 유신과 건국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쓴 것이다." 조용한 혁명>의 첫 문장입니다. 일본 근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건국' 과정을 '조용한 혁명'으로 표현했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혁명으로 정치권력과 종교적 권위가 천황 중심으로 단일화되었습니다. 쇼군(將軍)을 중심으로 한 봉건 체제, 지역 할거주의, 차별적 신분제도의 틀을 깨뜨렸습니다.  국내 정치 변화는 외교적인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1858년 일본이 미국과 불평등한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지만, 1889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은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메이지유신으로 얻..

읽은知 2024.05.30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_산복빨래방

산허리를 지나는 도로 ‘산복도로’, 부산에는 장장 22킬로미터에 이르는 산복도로가 있습니다. 산복도로를 따라 위, 아래로 다시 끝없는 계단이 또르르 깔렸습니다. 계단 중간쯤 오르다 보면, 마주 오는 사람의 어깨를 피하며 걸어야 할 정도로 비좁은 골목이 나타납니다. 골목 따라 따닥따닥 붙어있는 집 대문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 아랫집 옥상입니다. 산복도로 집마다 아직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부산의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오랜 세월 산허리에서 꿋꿋이 자신의 삶을 지켜온 주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언론사 기자와 피디 4명이 일을 꾸몄습니다. 회삿돈으로 산복도로 빈집을 빌려 빨래방을 차렸습니다. 그들은 주민들에게 무료로 옷과 이불을 빨아주고 세탁비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6개월 간 주민들이 들려..

읽은知 2024.05.19

맡겨진 소녀

“일요일 이른 아침, 클로너걸에서의 첫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을 향해 웩스퍼드 깊숙이 차를 달린다. 덥고 환한 날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의 시작 부분입니다. 이 문장은 이야기의 줄거리와 분위기를 모두 말해줍니다. 다섯째 아이의 출산을 앞둔 엄마는 밭일과 집안일에 지쳤고 밥그릇을 하나라도 줄여야 했습니다. 눈치 빠른 아이 한 명을 방학 동안 먼 친척에게,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부부에게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덥고 환한 날’은 이 소설의 분위기를 말해줍니다. 소녀가 맡겨진 날은 여름이었습니다. 푹푹 찌는 날씨에 땅은 푸석거렸습니다. 신부님이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소녀가 ‘맡겨진’ 킨셀라 아주머니 집에는 더위만큼 불편한 ..

읽은知 2024.05.06

말은 힘이다_말과 태도 사이

그 사람이 살아온 길만 봐도 한 번쯤 만나고 싶고 그의 말을 듣고 싶어지는 인물이 있습니다. 제게는 유정임 작가가 그런 분입니다. 작가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를 하고, KNN 방송국 PD를 거쳐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을 지냈습니다. 이후 대표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작가는 지난해 직(職)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일’이란 어떤 것일까요? 말 아닌 것이 세상을 흔들고 예의와 기본을 갖추지 않는 행동이 관심을 받는 요즘, 말과 태도에 품격을 더하는 법을 알리는 일입니다. 지난해 이미 책을 한 권 출간했습니다. 직을 떠나기 전에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말과 태도 사이>(토네이도)는 자신이 30년 방송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물들의 말과 태..

읽은知 2024.04.28

우리 삶의 근거 농사_녹평 182호

(이하 ‘녹평’)이 일 년 남짓 휴식기를 가지고 2023년 여름호로 복간했습니다. 통권 182호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녹평 덕분입니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 사회가 호들갑 떨지 않고 조금 더 안전하고 조화로운 관계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의견을 말합니다. 녹평을 읽고 나면 별도로 독서카드를 만듭니다. 제가 나태해졌거나 무기력하다고 느껴질 때 카드를 넘기며 메모해 둔 글을 읽습니다. 다음은 녹평에서 훔쳐 온 문장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기존 정책에 대한 대안을 개발하는 것이며,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될 때까지 그 대안이 살아있고 유효하도록 지키는 것이다.”(녹평 138호, 밀턴 프리드먼) 이번 호는 전쟁과 기후재앙이 어..

읽은知 2024.04.21

모든 삶은 흐른다

“우리라는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다면, 바다 앞에 서기를 바란다. 파도의 리듬에 맞출 때, 파도의 움직임과 빛이 보여주는 놀라운 아름다움 속에 있을 때, 산다는 것과 충만함이 무엇인지 대략 보일 것이다.” 의 저자, 로랑스 드빌레르는 서문에서 책을 쓴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는 바다를 통해 ‘산다는 것과 충만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철학자의 통찰력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바다를 삶의 안내자로 바꿔 놓았습니다. 지난 토요일, 송정에서 로랑스 드빌레르가 말하는 바다를 만났습니다. 그의 말처럼 바다 앞에 서면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에서 저자는 바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소재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지혜를 뽑아냅니다. 밀물과 썰물, 무인도, 난파, 해적..

읽은知 2024.04.07

누군가 나 때문에 불행해졌을 때_로기완을 만났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김 작가는 탈북민 기사를 보던 중 이니셜로만 표시된 한 남성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저 ‘이니셜 L’로 불리던 ‘로기완’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춥고 낯선 땅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려고 했을까요? 김작가는 브뤼셀로 향했습니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이야기입니다. 출판사는 올해 표지를 바꿔 다시 책을 펴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두 번째 읽었습니다. 김 작가는 2010년, 로기완이 잠시 머물렀던 호스텔, 난민 신청을 거절당했던 대사관, 잠을 청해야 했던 화장실, 행인에게 자비심을 호소한 길바닥에서 그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탈북민을 도와주는 ‘박’이라는 전직 의사로부터 받은 로기완의 일기장이 안내서 역할을 했습니다. 로기완의 행적을 쫓아..

읽은知 202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