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필85 2024. 7. 7. 17:04

인생은 시간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나는 내 인생을 늘 푸른 바다라고 생각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비채)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시인의 산문집은 마치 시집처럼 읽힙니다. 생각과 문장 흐름에 막힘이 없습니다. 문장을 읽노라면 영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은유와 상징이 정곡을 찌릅니다.

 

저는 문학적인 취향을 가진 분이 가벼운 책을 읽고 싶다고 하시면 시인이 쓴산문집을 권합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 고르라면 문정희 시인의 <문학의 도끼로 네 삶을 깨워라>, 이문재 시인의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허수경 시인의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정호승 시인이 자신의 작품 70여 편을 소개하면서 시의 중심 생각과 소재에 얽힌 사연을 들려줍니다. 하루살이, 수선화, , 반지, 봄비, 첫 키스. 시인의 눈에 잡힌 생물과 사물, 행동뿐만 아니라 뇌에서 끄집어낸 기억까지 짧은 문장으로 노래하고 긴 문장으로 이야기를 짓습니다.

 

소개된 시 중 <굴비>라는 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 (중략) /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시간에게>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무엇을 사랑했느냐고 묻지 마시게 / 누구를 사랑했느냐고 묻지 마시게 / 밥이 눈물이 될 때까지 열심히 살았을 뿐 / (이하 생략)”

 

온갖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나서 푸른 바다를 향해 걷는 여행자가 떠오릅니다. 밥이 눈물이 되고, 떨어지는 눈물이 아름다운 진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정호승 시인의 삶이 그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채워져야겠습니다.

 

  책 속에서 뜻밖의 내용을 만났습니다. 시인은 인생에서 진정 후회되는 일이 몇 가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은 황금 같은 청춘 시절에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연 단위로 독서계획을 세우고 독서 노트도 마련해서 기록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일이 후회스럽다, 고 밝혔습니다.

 

저는 문정희 시인이 몇 명의 작가들과 이야기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시인은 작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얼떨결에 놓쳐버린 것 가운데 후회스러운 일이 무엇이냐? 그 자리에 있던 작가 모두가 공감한, ‘가장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은 젊은 날부터 체계적인 독서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정호승 시인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책을 읽는 행위가 쉽지 않다는 것, 이에 더하여 체계적인 독서는 더더욱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독서를 한다면 아름다운 말을 짓는 시인이 되거나 행복한 시간 여행자가 될 수 있겠구나! 책을 읽는 원칙을 정하고 짜임새 있게 정리한다면 더욱 확실하겠구나!

 

아직 두 눈 감을 날이 많이 남았습니다. 책이 밥이 되고 빛나는 보석이 될 때까지 한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 체계적인 독서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