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원작)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와 관련된 가사를 읽다가 영화가 원작과 다르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원작이 만화라는 것에 더 호기심이 발동하여 서둘러 책을 구입하였다.
모두 세 편으로 구성된 원작은 프랑스 작가들(자크 로브 외 2명)의 작품이다. 기계의 운동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엔진을 가진 기차가 지구를 돈다는 설정과 선두 칸에서부터 꼬리 칸까지 몇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지위에 맞는 방식으로 인생을 즐기거나 죽지못해 살아가는 모습은 영화와 같다.
원작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치와 결말이 다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나(고아성 분)에게 흰곰을 보여주며 희망을 이야기 하지만 원작은 그들에게 닥친 얼어붙은 어둠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내게는 영화보다 만화가 더 실제적이다.
원작 <설국열차> 1편은 꼬리 칸을 탈출 하다가 붙잡힌 프롤로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프롤로프는 아들린이라는 이등칸의 여자와 함께 맨 앞 칸으로 호송된다. 아들린은 꼬리칸을 도우려는 민간단체 회원이지만 프롤로프와 함께 죄수 취급을 받으며 호송된다.
프롤로프는 칸을 지나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꼬리 칸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앞쪽 칸 인간들을 보고 분노한다. 병사들을 따돌리고 가까스로 엔진에 도착한 프롤로프는 생명이 다해가는 기관사를 대신해 엔진을 맡는다. 그동안 엔진이 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앞 칸의 사람들은 뒷 칸을 떼어낸다. 이어서 프롤로프는 열차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옮긴 전염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고 미쳐간다.
2편은 제2설국열차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1열차가 모르는 제2열차가 있었던 것이다. 두 대의 열차가 지구 위를 달린다는 설정에 나는 또 한번 원작이 주는 긴장감에 빠졌다. 제2열차는 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기는 하지만 계급은 여전히 존재한다. 열차에는 선발대가 있어서 한번씩 열차를 정지시키고 얼어붙은 땅에서 생명을 탐색하지만 늘 절망뿐이었다. 꼬리 칸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여기서도 지도자들은 그들을 분리한다.
3편에서 설국열차는 바다건너 어느 지점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전파를 잡고 생명을 찾아 떠난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 도착하였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기계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원작 <설국열차>의 마지막 구절이다.
언덕과 이어지지 않는 평원은 없고 돌아옴이 없는 나아감은 없으며
언제나 경계하며 사는 자는 책망 받을 일이 없으니
이 같은 진리를 유감스러워하지 말지어다
아직 네게 있는 복을 맘껏 누릴지어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서 꼬리 칸 사람들의 반란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하지만 칸칸이 막혀있고 일렬로 길게 늘어선 기차에서 앞 칸으로의 이동은 영화 같은 이야기 일 뿐이다. 그보다는 기차가 느려지거나 뒷 칸에서 말썽이 생기면 연결고리를 떼 내어 버리는 원작이 더 설득력이 있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지구와 설국열차가 대비된다. 1년에 한 바퀴씩 정해진 궤도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돌고 있는 지구, 지구 위 어디에는 폭력과 굶주림이 일상인 꼬리 칸이 있고 또 다른 곳에는 계절 없이 넘쳐나는 음식과 쾌락으로 중독 된 황금칸이 있다.
나는 영화보다 원작이 앞선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설국열차>에서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가 꼬리 칸 사람들에게 내뱉는 말은 그 차이를 따라 잡을 만하다.
“Keep your place”(네 자리를 지켜)
이 문장은 <설국열차> 원작과 영화의 결론에 가깝다. 더 마음이 불편한 것은 지면과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 삶의 본질에도 가깝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진리가 유감스러울지라도 아직 내게 남은 복을 맘껏 누려야겠다.
- 2013.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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