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조건 없이 기본소득

필85 2015. 4. 7. 08:29

조건 없이 기본소득

 

    2014 2월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자살했다. 나는 복지문제를 생각하면 늘 이 사건이 떠오른다. 실직한 어머니는 70만원이 든 봉투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어머니는 힘들게 살았던 인생을 정리하면서 집 주인과 우리사회에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병든 딸과 함께 살다가 어느 날 직장에서 쫒겨 난 그 어머니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조건 없이 기본소득>의 저자 바티스트 밀롱도는 위의 사례와 같이 사회최저급부를 받아야 할 대상자들이 소외 받는 세 가지 원인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사회최저급부를 받으려는 자는 그 대가로 무엇인가(재교육과정에 참여한다든지,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다짐하는 증명을 행할 것 등)를 약속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요구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지원받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두 번째는 수입수준에 따라 사회최저급부가 정해짐에 따라 수령자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심사청구 앞에서 겪는 모욕적인 순간을 피하기 위해 소득신청을 포기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사회최저급부제도를 포함한 사회보장시스템은 복잡한 제도를 한데 모은 것이기 때문에 매년 달라지는 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수령자는 그 시스템을 꿰고 있어야 한다. 때로는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몰라서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는데도 신청조차 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내 놓은 대안이 조건 없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각 개인이 일을 않고도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 두 번째, 기본소득은 완전히 조건 없이 지급되어야 한다. , 어떠한 대가를 요구해서도 안된다.

 

    기본소득 지급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근로의욕 저하이다. 기본소득을 지급받게 되면 근로자는 당연히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스위스와 독일에서 제작된 다큐멘타리 <기본소득>(Le revenu de base, 2008)에서 설문조사 응답자의 60%는 기본소득이 지급되어도 변함없이 일을 하겠다고 하였으며, 30%는 일을 유지하되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즉 수급자들의 일의 형태가 달라지기는 해도 모든 사람이 놀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두 번째는 무임승차자 문제다. 성실한 노동자가 행복한 백수의 취미생활자금을 대는게 말이 되는가,하고 반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모든 개인이 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인정할 때 개인의 활동이 무엇이건 그 활동에 대한 대가를 사회에 도리어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기본소득에는 개인이 어떤 활동을 하든 그 활동이 사회전체의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베짱이도, 깊은 산속 암자의 수도승도, 게임 폐인도, 부산역의 노숙자들도 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다음은 가장 심각한 반론인 재원문제다. 저자는 사회적 합의만 이끌어내면 세금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2014년에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을 만든 적이 있다. 국민 1인당 연 360만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연 184 2천억원이 필요하다. 이 기본모델에서 강남훈 교수는 기초노령연금 등 기존 사회복지 지출을 조절하고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 생태세를 도입하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 지급에 대한 반론을 잠재운다하더라도 실행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정주부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시도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요리, 세탁, 집안 청소 활동에 대한 대가를 우리 사회가 지급하는 것이다. 당장 실천은 힘들지라도 이제는 용돈 수준이 된 기초노령연금 이나 국민연금에 대한 재논의와 함께 기본소득, 대안소득, 참여소득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오래 전 어느 여름날, 동네의 한 분식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남자 어린이가 김밥과 라면을 먹고 계산대에서 머뭇거리며 식권을 내밀고 주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사회가 그들에게 가한 폭력이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의 무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창구에 서거나 성실하게 무엇을 할 것을 약속하는 서명을 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제는 송파구에서 살았던 어머니에게, 방학동안 식권으로 끼니를 때우고 지금은 청년이 되었을 그들에게 가난과 실직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자. 그리고 아무 조건없이 (안아) 주자. 이제 그래야 할 때다.

 

- 201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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