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필85 2019. 3. 3. 22:27


 

이문재 시인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국민소득은 늘었을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은 더 많아졌다.

"궁핍의 여러목록 가운데 하나가 시간이 없다는 것인데, 자기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처럼

가난한 사람도 또 없다."(152쪽)

 

시인은 한용운의 시를 읽다가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라는 문장 앞에서 숨이 컥, 하고 막힌 적이

있다고 하면서 '바쁜 것처럼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반인간적.반자연적인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하고

반문한다.

 

이 책은 시인 스스로 속도에 길들여진 것을 반성하면서 느림과 기억, '몸으로서의 나'를 찾아가는 글들로

채워졌다. 시인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을 느림, 기다림, 그리움의 시각으로, 또 시인 특유의

감칠맛 나는 언어로 써 내려갔다.

 

시인은 '디지털문명의 요체는 기다림을 삭제했다는 데에 있다'고 하면서 '기다림/그리움은 무엇보다

먼저 자기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기억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공감이 간다.

'삶의 에너지는 대부분 기억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강조하면서 '다양하고 풍부하고 깊이가 있는 기억을

가진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한다.

 

시인은 시詩는 '미래에 대한 징후를 읽어내는 예민한 감수성이자 상상력'이라고 하면서 이때의 예감은

지식의 양이나 경험의 부피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로지 '몸'에서 나온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다짐한다.

 

"내가 잃어버린 '몸으로서의 나'는 결코 누군가 또는 그 무엇이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무서운 사실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다. 온전한 몸을 만나는 일은 전적으로 투쟁이라는 것을 명심 할 것이다."(41쪽)

 

바쁘지않아야 기억을 소환할 수 있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바쁘지않아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독서를 할 수 있다. 바쁘지않아야 벌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버는 것인지,

(잘)사는 것이 어떤 것이지, 가끔이라도 내게 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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