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문자를 가졌던 민족이 왜 가나와같이 불편한, 그리고 한자를 섞어 쓰지 않으면 제대로 뜻이 통하지도 않는 글자를 가진 내지인들에게 정복되어서, 나라를 빼앗기고, 역사를 잃고 말과 글을 잃고, 심지어 이름까지 잃었나? 왜?"
평범한 가장이자 회사원인 기노시다 히데요( 木下英世)는 자기나라가 식민지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이등국민으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하여 서서히 각성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상(上)권에서는 주인공이 부조리한 사건들을 겪고 생각을 거듭함으로써 이미 사라져버린 국가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下)권에서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행동하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글자가 새겨져 있을
묘비를 찾아나선다든지, 상해에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임시정부와 관계된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묘비를 찾아나선다든지, 상해에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임시정부와 관계된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복거일의 소설 <묘비명을 찾아서>(문학과 지성사)는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이다. 저자에 의하면 대체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의 결말이 현재의 역사와 다르게 났다는 가정을 하고 그 뒤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작품의 배경으로 삼는 기법'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이또 히로부미가 1909년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의 대의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지고 일본 정치에 복귀한다. 그는 군국주의 팽창을 억제하며 안정적인 외교를 펼쳤다는 가정을 한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조선은 일본의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역사와 말, 글, 이름을 잃은 식민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회사에서 업적을 내고도 내지인(일본인)에게 공적을 빼앗기고 흠모하던 내지인인 여인에게 자격지심떼문에 고백도 하지 못한다. 기노시다 히데요는 혼란속에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시인 지망생답게 언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조선어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이미 흘러간 역사나 벌어진 사건에 대하여 부정하고 새로운 역사를 편집하는 것이 재미 외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하고 생각해보았다. 대체되는 가정을 통해서 '참, 다행이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현재의 삶에 행복감을 느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그랬는지 분석하고 곱씹어보게 된다.
역사와 과거 사건의 부정 또는 가정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에 대하여 (근거가 약할지라도) 예측해 보고 상상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
국가의 미래는, 나의 앞날은 내 생각과 조금도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상상하고 소망하는 것 뿐이다. 상상할 수 있다면 실천할 수 있다. 소설은 내게 상상하는 힘을 준다. 소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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