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대한 기억을 갖지 못한 자들은 ’좋은 날에 우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차스럽다거나 청승맞다고 매도한다. 하지만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사람‘은 시시콜콜 말하지 않고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이심전심이 되고 만다.’
손세실리아 시인이 조재도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좋은 날에 우는 사람>을 소개하는 글이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오늘의 좋은 날이 거저 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사람은
좋은 날에도 운다
(중략)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듯한 울음
한평생 모질음에 부대끼며 살아온
삭히고 또 삭혀도 가슴 응어리로 남은 세월
(중략)
그러면서 오늘
훌쩍거리며
소주에 국밥 한 상 잘 차려내고
즐겁고 기꺼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좋은 날에 우는 사람> 일부)
나는 조재도 시인의 시에서 느림과 기억, 새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먼저 느림이다. 시인은 느림의 상징인 자라를 시집에 데려왔다. ‘노인 병원 수족관에 자라 한 마리 납작 엎드려 있다.’로 시작하는 <자라>라는 시에서 시인은 ’삶은 어쩌면 처음부터 저렇게 느리게 움직였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시 제목 자체가 느림인 <가만 있자 그러니까 그게 거, 할 때의 그 가만 있자에 대하여>라는 시도 있다.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학생 둘을 도서실에 불러 앉혀놓고 ’딱 5분만 가만 있자‘라고 하는 <고요의 힘>에서도 느림, 가만, 고요가 주는 힘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시를 느릿느릿 읽다 보면 삶의 본질이 느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다음은 기억이다. 전교조 결성으로 해직되었다가 복귀한 교단에서 시인은 옛 기억을 떠올린다. ’칠판처럼 마음이 암녹색일 때가 있다 / 칠판처럼 묵묵히 외로움일 때가 있다 / (중략) 그 앞에 다시 서기 위해 / 십 년을 고스란히 싸운 날이 있다‘(<칠판> 일부)
즐거운 기억도 소환한다. 시인은 ’30여 년 전 고등학교 일이 학년 때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배운 독일어 수업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끝이 났다. 관사 몇 개 외우고 엎드려 자는 동안 / 독일어는 우리에게 죄송하다며 / 달갑지 않은 손님처럼 멀어져 갔다 / (중략) 그렇게 독일어는 내 안에서 / 오랫동안 침묵과 뒤섞여 있다가 / 나의 또 하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것이다 // 세상에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독일어 공부> 일부)
나도 독일어를 배웠다. 잠시 만난 독일어에게 나는 미안함을 가졌다. 독일어는 한 번만 배워두면 아는 체 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어디서든 독일어를 만나면 소리 내어 읽어본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 ‘아인 아이네스 아이넴 아이넨’, 세상에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불멸의 원자처럼.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새로움이다. 57년생이라고 하지만 시인의 시마저 나이 들지는 않았다. 시인은 전과는 다르게 시를 써보려고 했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겨두기, 생략하기, 직접 인용, 빈칸으로 두기 등으로 ’시가 좀 재미있고, 풍부해지고 따뜻한 피가 돌았으면 하는 바람‘을 시인은 가졌다. <뒤뜰 정담>이라는 시에는 대화체가 불쑥 들어왔다. <최소>와 <봄비>라는 시에는 시각적 효과도 사용했다.
시인은 ’늙음도 달리 보면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늙음뿐이겠는가? 세상 모든 일이 새로워지는 일이다. 달리 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가을이 깊어 겨울이 되었다. 올해도 기울대로 기울어 갈 곳 없는 12월이다. 연말에 시집 한 권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시집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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