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 사흘째였습니다. 인파에 밀려 모나리자 그림을 구경하고 우리 가족이 향한 곳은 튈르리 정원이었습니다. 샹젤리제 거리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푸른 잔디와 조각상이 곳곳에 들어선 정원에서 분수대를 만났습니다. 주변에 철제의자가 여기저기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차지하지 않은 의자를 제 것인 양 끌어 모았습니다. 우리는 풍경과 사람을 구경하면서 쉬었습니다. 다시 걸어갈 힘을 얻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의 저자 임우진은 튈르리 정원의 의자를 가리켜 ‘가구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도시 사회적 역할을 함께 만족시킨 예’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시민이 자신의 방식대로 공원을 어지를 수 있기 때문에 이 공원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공간이 될 수 있었다.’라고 건축가로서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튈르리 의자 사진을 찾아보면서 파리 여행 기록을 들춰보았습니다. 저는 젊었고 아이들은 어렸습니다.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찍은 사진은 대부분 광장과 분수대를 배경으로 하였습니다. 파리 시청, 퐁피두센터, 생 셀피쉬 성당, 사크레쾨르 성당과 같이 유명한 건물 앞에는 공터와 물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우리는 시민인 것처럼 자리를 잡고 여유를 즐겼습니다.
건축가 임우진은 파리에서 도시건축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 국립 건축가로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오랜 외국 생활을 하고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저자는 건축가의 시각으로 집과 거리, 도시를 살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라는 책에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10개의 소주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지만 우리의 생활을 지배했던 내용입니다. 국회의원들은 왜 고함을 칠까? 부자들은 왜 벤츠를 탈까? 모임의 끝은 왜 항상 노래방일까? 왜 아이들은 항상 어지를까?
국회의원과 벤츠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저자는 모였다, 하면 무리를 만들어 싸우는 국회의원을 보고 의사당 구조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1975년 국회 건물을 지을 때 남북통일이나 개헌을 대비하여 600석을 기준으로 설계하였다고 합니다. 애초 계획보다 반 정도 되는 숫자가 공간을 쓰다 보니 고함을 치지 않으면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저자는 동물학자 ‘존 캘훈’의 ‘흰 쥐 실험’을 소개하였습니다. 넓은 공간에 수용된 흰 쥐는 편을 갈라 싸웠지만, 공간을 줄였더니 치즈를 나눠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적당한 거리가 사회적 관계와 유대를 증대시키고 나아가 개인의 지능까지 향상한다고 합니다. 파리 의사당 보다 세 배 이상 넓은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의 규모를 줄이는 것은 어떨까요?
벤츠를 선호하는 것도 도시의 공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전통적인 부와 권력의 상징이 고급자동차로 변한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벤츠를 많이 사는 국가입니다. 부자들은 벤츠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고 벤츠 회사는 자동차 모델의 클래스를 나누어 잇속을 챙깁니다.
제가 임우진 건축가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점점 더 세력을 넓혀가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빨간 페인트로 크게 가위표시가 된 폐가, 도로를 통제하고 레미콘 차가 드나드는 공사장,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 저의 출근길에 늘 마주하는 풍경입니다. 오래된 주택들이 철거되면서 그 자리에 캐슬, 편한 세상, 제니스, 하늘채가 들어섭니다. 입주민만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이런 아파트 단지는 ‘도시를 불구로 만들기 시작하고서야 그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다. 길은 끊어지고, 통행은 막힌다.’라고 하면서 저자는 ‘도시적 진공 상태‘가 된 지역이 곳곳에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공공의 보이지 않는 이익은 눈앞에 보이는 사적인 이익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재산권을 행사하려는 것이 시민의 이동 자유를 제한하고 이웃을 배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문제만 있고 답은 없습니다. 우리 도시가 불구가 되기 전에 문제부터 알려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유명한 도시와 비교하면서 우리 도시의 부족한 면을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도시에 대한 판에 박힌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탐험기’나 ‘목격담’으로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저도 그렇게 책을 읽었습니다. 뒤 페이지로 갈수록 저자는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만들고 싶어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공간의 특성과 개선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공동의 가치에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바랐습니다.
부산에 ‘수국마을’이 있습니다. 나무들이 모인 마을, 수국(樹國)마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보육시설의 기숙사를 개조해 달라는 수녀님의 요청을 받은 건축가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집단생활을 위한 기숙사는 원생을 감시하거나 관리, 보호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지었지만 정작 그 속에 생활하는 청소년들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으로 자랐습니다. 성인이 되면 보육원을 떠나야 합니다. 자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회에서 그들은 한없이 나약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축가는 기숙사 건물을 분해하여 여덟 채의 단독 주택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을이 된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매달 받는 생활비로 밥하고 빨래하고 물품도 사고 관리비까지 냈습니다. 집 마당에 과일나무도 심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나무들이 모인 마을이 되었습니다.
건축가 앞으로 아이들이 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배달되었습니다. 마을의 이장 수녀님이 찍은 마지막 사진에 건축가는 울컥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활비를 아껴 암남동의 독거노인에게 쌀을 전달해주는 사진이었습니다. 저자는 ‘아이들은 이미 그들 삶의 주인이 되어있었다.’라고 글을 맺습니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은 우리를 만든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보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만든 공간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눈여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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