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럼 코로나 시국에 이 정도도 안 먹인단 말이야”
“우리한테 누가 있어, 여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영’은 식구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모두의 목숨이 끝날 것처럼 매일 전쟁을 치렀습니다.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우수작으로 선정된 염승숙의 <믿음의 도약>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철’과 ‘영’입니다. 전기와 수도가 수시로 끊기고 방마다 곰팡이가 슨 전셋집에 사는 ‘철’과 ‘영’. 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영’에게는 빈곤한 삶보다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입니다. 종합비타민에 오메가3, 마그네슘, 비타민D까지 모든 식구가 밥보다 영양제를 더 많이 먹습니다. ‘철’은 너무 많이 먹는다, 고 잔소리를 하지만, ‘영’은 이 정도는 먹어야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을 보살펴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철’은 변변치 않은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대리운전을 하고, ‘영’은 온갖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마련합니다. 백화점 ‘오픈런’을 대신해 주는 날이면 ‘영’은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옵니다. 두 사람은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사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집 상태를. 독자를 위해 나머지 이야기는 남겨둡니다.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지난해 마지막 주에 읽었습니다. 작품집에는 작가 일곱 명의 단편소설이 실렸습니다. 이번 작품집에는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소설이 몇 편 선택되었습니다. 젊은이의 주택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습니다.
젊은 부부의 또 다른 주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화길 작가의 <복도>라는 작품입니다. 맞벌이 부부가 이제 막 입주한 ‘파빌아파트’ 1단지 100동은 임대주택입니다. 2단지는 일반 분양아파트입니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아파트이긴 하나 임대주택은 교묘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재활용품 선별장을 가려면 마치 외부인인 것처럼 복도를 빙 돌아가야 합니다. 주인공 부부가 사는 곳은 네이버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아 물건과 음식도 2단지에 배달됩니다. 힘들게 입주하였지만 기쁨도 잠시, 이웃에게 거부당하고 도둑이나 유괴범으로 몰리는 상황이 애처롭습니다.
임대 아파트의 현실은 며칠 전 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입주자가 임대 아파트 사전점검 후, 벽지가 누락되었다,고 메모를 남겼습니다. 누군가가 메모지 옆에 ‘그냥 사세요’라고 적고 갔습니다. 어느 TV 방송에서는 아파트 벽을 사이에 두고 구구단을 주고받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소설이 사실이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시대의 즐거움을 표현한 소설도 있습니다. 서이제 작가의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의 소재는 힙합과 랩입니다. 소설 곳곳에 더콰이엇, 넉살, 화나, 머쉬 베놈, 매드 클라운의 노래가 소개됩니다. 옆방의 쿵쾅거리는 소음 때문에 주인공은 랩을 떠올립니다. 쿵 쾅쾅 쿵 쾅쾅, 벽을 때리는 비트 소리에 잠을 설친 주인공은 뭔가 써야 할 것 같아 책상에 앉았습니다. 분노의 감정은 옆 방의 비트에 맞춰 현재와 과거로 넘나들게 됩니다. 내면까지 흐릅니다. 주인공의 경계심은 허물어지고 좋은 이웃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쪼개는 건 비트가 아니야”
“그 잘난 이빨 갈아 봤자 넌 겨우 다람쥐”
“오늘은 내가 힙합 요리사”
“내 영혼은 0g 절대 묶일 수 없어”
이 단편의 백미는 작가가 인용하는 힙합 가사입니다. 문장을 읽기만 해도 유쾌해집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쪼개면서 영혼은 자유로움 속에 둥둥 흘러 다녔습니다.
대상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은 성장소설입니다. 엿듣기와 불장난, 두 가지 큰 줄기로 나누어 소설을 읽었습니다. 주인공 소녀는 손님이 방문한 날이면 잠든 척하며 문에 귀를 대고 이야기를 엿듣습니다. 숙직실 청소를 도맡아 하는 친구들이 방 안에서 어떤 짓을 하는지 몰래 다가가서 귀를 댑니다.
작가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엿듣는 행위로 자기 욕망을 표현하던 아이는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쪽으로 옮겨’ 간다고’ 하면서, 책 속에서 표현된 ’타인의 방 너머 일이 아니라, 내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라는 문장을 언급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엿듣고 훔쳐보는 행위는 청소년기에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읽힙니다.
또 하나는 불장난입니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 전학과 이사를 거치면서 주인공은 길을 잃습니다. ‘그녀’라고 부르는 새어머니와의 생활 속에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불장난. 옥상의 불꽃은 한여름의 열기와 함께 계속되었습니다. 들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내면의 불안을 태우면서 주인공은 성장합니다.
저도 불장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추수하고 쌓아둔 볏짚단 속에 파묻혀 동무들과 옹기종기 모여 겨울을 보냈습니다. 한 번씩 돋보기로 빛을 모아 불을 피우곤 했습니다. 동네 어른에게 들켜 집에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머리가 더 커진 후에는 성냥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화~악 퍼지는 불꽃에 이어서 매캐하게 코끝에 스며드는 화약 냄새는 저의 정신을 빼놓곤 했습니다. 그 순간만은 모든 불안과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손보미 작가는 자신의 청소년기 경험을 소설로 썼습니다. 온갖 금기 속에 갇혀 수치심과 굴욕감은 느껴야 했던 시간을 잘 이겨냈습니다. 저도 청소년 시절 불장난을 꺼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