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知

여수 먹부림 마지막 날

필85 2023. 6. 4. 23:25

여행 마지막 날은 늘 어수선하고 바빠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그랬다.

 

원래 계획은 11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관광 요트나 수상스키를 탄 후에 간장 게장으로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순천 정원박람회를 들렀다가 부산으로 오면 저녁때가 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딸이 몸이 몹시 안좋다고 짜증을 낸다. 이틀 동안 본인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못했으니 병이 날만도 하다. 딸은 아침 일찍 잠들어서 오후에 일어나는 생활습관을 가졌다. 여행기간 동안 해 뜨면 일어나서 움직여야 했으니 나름대로 힘들었겠다.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3년 전, 맛있게 먹었던 간장게장 집에서 포장용 게장을 샀다. 집에와서 먹어보니 식당에서 먹는 맛이 나지 않았다. 비싸기만 했다. 마지막날 먹부림은 허무하게 끝난 셈이다.

 

호텔 방에서 보는 여수 바다

  코로나가 종료되고 처음 간 여행이라는 것, 육회 사시미를 제대로 먹어봤다는 것, 변하지 않은 별미 '하모 유비끼'를 제대로 음미했다는 것은 기억에 남을 만하다. 식사하면서, 이동하면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던지고 받았으니 이것도 이번 여행의 소득이다.

 

호텔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봤다. 드라마 '차정숙', 예능 '싸이렌', '댄스가수 유랑단'.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행동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기도 했다. '강철부대'의 여성 버전인 '싸이렌'의 새로운 포맷과 접근 방식, 등장인물이 벌이는 전략과 혈투를 소재로 딸과 의견을 나눴다. 여전히 유쾌한 엄정화와 이효리,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낸 김완선의 노래에 감동하고 웃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이벤트다.

 

  경험을 공유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것, 살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여행은 그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한다. 여행하는 삶, 내가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