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조건(원제 : 대국굴기)
작년 4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을 받았다. 수업 중 강사로 초청받은 어느 도(道)의 정무부지사가 공무원이라면 반드시 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국굴기>(대국으로 우뚝 솟음)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하였다.
<대국굴기>는 중국 CCTV가 15세기 이후 세계를 호령한 9개 국가를 선정하고 이들 국가들이 어떻게 강국이 되었는지 분석한 영상물이라고 소개하였다. 기업체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다 지자체의 정무부지사가 된 강사는 일생동안 500여개의 기업을 설립하면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린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소개하면서 기업의 힘이 국가를 강대하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교육을 마친 후 EBS에서 번역 제작한 CD를 구해서 몇 편을 보다가 자료가 훨씬 상세하고 풍부한 <강대국의 조건(원제 대국굴기)>을 구하여 읽게 되었다.
읽기 전에는 강사의 조언에 따라 기업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을 생각했지만,
읽고 난 후 나는 훨씬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CCTV가 선정한 강대국은 어떤 나라인지 알아야겠다. CCTV가 선정한 강대국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들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모두 9개나라이다. 순서대로 강대국의 일면을 살펴보자.
1449년 콜럼버스의 북아메리카 발견이후 잇달아 신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의 식민지를 약탈하면서 세계를 각각 반으로 나누어 가졌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 400년전에 세계최초의 주식거래소와 은행을 설립해 현대식 자본시장의 기틀을 마련한 작지만 강한 나라 네들란드가 뒤를 이었다.
산업혁명으로,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린 영국과,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旗幟)로 내걸었던 '대혁명'(1789년)을 거쳐 사상과 문화적 역량의 세계중심인 프랑스가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국가 통일은 늦었지만 풍부한 석탄과 철, 훌륭한 교육시스템과 기술자들로 2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나서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근원지였던 독일과 아시아의 대국 일본을 빠뜨릴 수는 없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러시아와 짧지만 굵은 역사를 가진 미국도 자타가 공인하는 강대국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름대로 강대국이 발호(跋扈)한 경위를 나라별로 다시 분류해보고 공통점을 발췌하였다. 책 <강대국의 조건>에서는 사상과 문화의 영향력, 정치체제, 제도의 개혁이 대국의 흥망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나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보았다. '선점, 모방, 열악한 국가환경, 사상과 문화, 기술력'이 그것이다.
우선 '선점'이다. 유럽남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강력한 해상세력을 바탕으로 신대륙을 개척하면서 식민지로부터 부를 창출했다. 두 번째는 '모방'이다. 일본은 100명에 달하는 '이와쿠라 사절단'이 1871년 12월부터 2년간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면서 서양의 문물을 배우고 이를 일본화시켰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도 1697년 학생의 신분으로 네들란드에 머무르면서 유럽의 문물을 배워 강력한 개혁정책을 실시 하였다.
다음은 '열악한 국가 환경'이 오히려 국가 발전의 자극제가 된 예이다. 네들란드는 수면보다 낮은 지형 때문에 숱한 홍수와 싸우면서 강대해 졌고, 독일은 1834년 관세동맹이 체결되기 전까지 주위 국가들의 견제 때문에 제대로 나라의 꼴도 갖추지 못했었다. 러시아도 뿌리 깊은 농노제도가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가 마침내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게 되었다.
'사상과 문화의 힘'이 강대국이 되는 조건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근원이 된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제시한 '루소', 진보적 계몽군주제를 지지한 '볼테르', 근대 철학의 시조인 '데카르트', 삼권분립의 기초를 세운 '몽테스키외', 유물론과 무신론을 주장했던 '디드로'는 인류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모두 프랑스 파리의 판테온에 묻혀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이 배출한 '루터', '칸트', '괴테' 같은 사상가와 문호를 비롯하여 '베토벤', '헨델', '모차르트', '슈베르트', '바흐'같은 음악가들에게 우리는 문화적으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술력을 들 수 있다.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과 강력한 특허권 보호제도를 통해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미국이 그 예다.
내가 생각하는 강대국의 공통점은 '교육과 착취'다. 독일의 피히테(1762~1814년)는 '교육만이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나폴레옹에게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가 탄생하였다. 이 대학의 본관복도에는 같은 대학에서 배출된 노벨상 수상자 29명의 사진이 걸려있다.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그의 비문에 대통령 경력 대신 '버지니아대학교의 창립자’를 새기도록 했다. 그는 교육자로서의 헌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부정적인 면이다. 강대국은 예외 없이 주변약소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원주민을 약탈했다. 신대륙에서는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와 홍역으로 면역성이 없는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황금에 눈이 어두운 식민지 개척자들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아스텍과 잉카제국을 멸망시켰다.
미국정부도 서부개척시기에 원주민을 강제로 이주시켰으며 체로키 부족은 보호구역인 조지아주에서 황금이 발견되자 다시 오클라호마로 압송 당하면서 1만 2천명이 사망했다. 야만적이고 비열한 방식으로 원주민을 취급한 결과, 1492년 미국영토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120만명이었지만 1910년에는 22만명으로 줄었다.
덧붙혀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자오화용' CCTV 사장은 '역사는 미래를 밝힌다'는 주제의 머리말에서 'CCTV는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12부작 타규멘터리 <대국굴기>를 완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8권의 <강대국의 조건(원제 대국굴기)>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책에는 100여명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강대국의 조건과 중국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토론을 해주었다.
중국은 강대국의 역사를 학습하면서 중국의 미래를 밝히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이 주위 약소국가와 민족을 짓밟지 않고 인류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8권에 달하는 책을 A4 두 장으로 요약하였다. 누가 내게 <강대국의 조건>을
한 단어로 말하라고 하면 나는 '자유'라 하겠다. 자유로부터 문학과 사상이 꽃피고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였다. 1620년 9월 16일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나선 102명의 청교도에 의해서 한 세기가 넘도록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탄생했다.
강한 도시도, 강한 개인도 '자유'의 정도로 가늠된다.
부산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묻는다.
-2009. 6. 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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