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知

2013년 겨울 서울여행

필85 2014. 3. 10. 08:51

 

2013년 겨울 서울 여행

 

2013년 연말 결혼 20주년을 맞이하여 가족 여행을 계획하였다. 목적지는 한국 근현대회화 100점을 전시하는 국립현대미술과 덕수궁관으로 정했다. 아내가 신문을 펼치다가 한번 가보고 싶다기에 그렇게 했다.

 

서울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하고 시내에서는 지하철을 타기로 하였다. 인터넷으로 이곳저곳 검색해 본 결과 시내에서 승용차를 이용하기에는 주차장 찾기가 어렵고 주차요금도 만만치 않았다. 주차요금이 시간당 6,000원까지 하는 곳도 있었다.

 

숙박 장소로 처음에는 모텔을 알아보다가 청계천 수표교 근처에 있는 호텔 더 디자이너스를 예약했다. 디자이너 몇 명이 모여서 지은 호텔인데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진은 내부가 깔끔해 보였다. 호텔 전문 예약 사이트인 호텔조인에서 예약했다.

 

1227일 출발 당일 오전, 동희가 방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자마자 일제히 옷을 갈아있고 부산을 출발했다. 얼마 전 교육을 받기위해 대전까지 승용차 운전을 해 본적은 있지만 서울까지는 초행이라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점심식사 겸 휴식을 포함해서 두 번 휴게소에 쉬고 바로 서울로 진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서울 진입 이후였다. 한강을 따라 올림픽 도로를 달리면서 다리를 건너야 하는 데 금요일 퇴근시간과 맞물려 지체가 되었다. 더 곤란했던 것은 네이버 지도에 있는 주소를 찍어서 도착한 곳에 호텔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호텔에 직접 전화하여 물어보니 다른 번지였다. 좁은 골목길을 통과해서 힘들게 찾긴 했지만 미리 확인하지 못한 나의 불찰로 30분 넘게 지체되었다.

 

내가 예약한 슈페리어 객실은 좁았다. 이왕에 내가 숙박비를 치르기로 했는데 더 좋은 객실로 예약할 걸 하는 후회를 했다. 그런대로 잠만 자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짐을 풀어놓고 길 건너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식당을 찾았다. 찬 손님이 이 집이 맛집임을 말해주었다. 세트 음식 2가지와 단품을 하나 시켰다. 그릇을 비우고 깨끗이 비우고 돌아보니 외국인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식당뿐만 아니라 인사동 거리에는 한사람 건너 한사람은 외국인이었다. 깔끔하게 단장된 거리에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지만 우리는 가게에 들어가서 쇼핑을 하지는 않았다. 차가운 날씨가 우리의 걸음을 재촉했다.

 

인사동 네거리를 지나 광화문까지 가려고 방향을 잡았지만 부산과는 차원이 다른 날씨에 중간쯤 가다가 발길을 돌렸다. 오는 길에 경찰버스가 있어 주위를 살펴보니 조계사가 눈에 들어왔다. KTX 파업으로 철도노조원이 피신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조계사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대기 중인 뉴스카메라도 보였다. 등으로 둘러싸인 대웅전에는 커다란 불상 세 개가 나란히 앉아 절하는 중생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호텔에 들어와서는 아내와 동희가 자는 방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연말 가요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으로 첫 날이자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침대가 좁아 동호는 바닥에서 잤다. 온돌처럼 방바닥이 따뜻해서 다행이긴 했지만 다음부터는 트윈으로 해야겠다.

 

아침식사는 전날 사두었던 컵라면으로 때우고 체크아웃을 했다. 짐은 차에 두고 나중에 찾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자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영화10도의 위력을 실감했다. 지하철을 타고 덕수궁 대한문에 도착했다. 개관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벌써 관람객이 제법 보였다. 덕수궁에는 녹다만 눈이 얼어서 곳곳에 빙판이 되어 있었다.

 

덕수궁 석조전은 아담했다. 1관은 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김인승, 구본웅, 배운성 등의 작품이, 2관은 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이중섭, 박수, 김환기 등의 작품이, 3관은 전통의 계승과 변화라는 주제로 이응노, 김기창, 천경자의 작품이, 4관은 60년부터 70년대까지 유영국, 최영림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인승의 <화실>, 오지호의 <남향집>, 배운성의 <가족도> 등 몇 작품들은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이미 작품해설을 읽은 적이 있어 그림이 한층 친근하게 다가왔다. 소설가 이상을 그린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은 다른 책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원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보고 싶었던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 2관은 2층에 있었다. 이중섭에 대한 책 몇 권을 읽으면서 <><황소>는 숱하게 봤지만 원작을 대하니 그림에 대한 인상이 확실히 달랐다. 특히 <황소>그림에서 소의 검은 눈동자와 붉은 배경은 나를 압도했다.

 

<길 떠나는 가족>에서 가장이 흥얼거리며 소를 끌고 앞장을 선 모습은 40세에 스스로 음식을 거부하고 목숨을 다한 화가를 떠올리게 하여 가슴이 먹먹해졌다. 민족작가이면서 일본여인과 결혼하고, 그림에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으나 생활에는 한없이 무능했던 중섭의 죽음은 자살과 다름없다.

 

3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림은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이었. 아프리카 초원에 사자와 얼룩말, 기린이 한가로이 쉬고 있는 가운데 벌거벗은 여인이 코끼리 등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바닥 깊은 곳의 외로움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었다.

 

석조전 앞에서 가족사진을 한 장 찍고 덕수궁을 휘돌아 나왔다. 덕수궁 돌담길을 50미터 정도 걷다가 담장 옆 할매국수집으로 향했다. 몇 안 되는 식당을 고르고 골라 들어간 식당은 손님이 꽉 찼다. 멸치 국물 맛이 구수했다. 서울에는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수 맛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덕수궁 옆 서울시청 광장에는 경찰버스가 빼곡히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시위를 알리는 마이크 소리가 요란했다. 시간이 멈춘 듯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 순간 덕수궁을 지키는 옛 군사차림의 행렬이 지나가더니만 대한문 앞에 위치를 잡았다. 구경은 좋았으나 이 추위에 군사들은 고생이겠다 싶었다.

 

다음은 동희가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BWCW’로 향했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신사역에서 내려 조금 걸었다. BWCW에 도착한 순간 동희는 환호성을 질렀다. 매장은 10대로 가득 찼. 나는 입구에 앉아서 기다리고 저희들은 매장을 구경했다.

 

중년의 일본 여성도 보였다. 방문객들은 최고급 카메라를 들고 입구에 전시된 엑소멤버의 사진에 렌즈를 들이댔다. 비딱씨딱(BWCW)에는 엑소가 사용했던 소품과 같은 종류의 물건을 파는 곳인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티셔츠가 15만원, 가방이 25만원이었다. 영리한 동희는 실컷 매장을 구경하고 스티커와 사진 등 간단한 기념품을 구입했다. 비싼 물건 사달라면 큰 맘 먹고 사 줄 생각도 있었는데 나의 근심은 기우였다.

 

호텔에서 차를 찾아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 광장을 한번 둘러서 오려고 했으나 그쪽 방향으로 차가 꽉 막혀 있어서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그날 광화문에 10만의 인파가 모였다고 한다.

 

저녁 9시쯤 부산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와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도록을 이리저리 펼쳐보면서 덕수궁에 전시된 그림을 떠 올렸다. 엑소 사진을 정리하는 동희도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덕수궁과 인사동 밖에 보지 못했으나 서울 관광의 매력이 꽤 크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승용차를 피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겠다. 매년 연말에 서울 여행을 가자는 의견도 나왔다. 내년에는 20년을 제하고 나면 결혼 1주년이 되겠다.

 

정리 2014.3.6.() -

 

 

 

  

<덕수궁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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