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로부터 이 유명한 책을 아직 읽지 않았느냐,는 핀잔을 듣고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폈다.
서른네 살인 김지영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가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어느 가을 날부터 그녀에게 다른 인격이 나타나는 증세가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친정어머니, 남편의 옛 애인의 말투와 행동이 그녀에게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의사는 산후우울증, 육아우울증, 또는 해리장애로 설명하지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았다.
소설의 대부분은 김지영씨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줄거리는 따로 소개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너무나 쉽게 마주하는 여성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먼저 읽은 고3 딸은 이 소설이 짜증스럽다고 했다, 너무나 사실적이라고 하면서. 오직 손자만 챙기는 할머니, 가부장적인 아버지, 여성 억압적인 교육, 여성차별의 직장문화, 독박쓰는 육아, 나의 어머니와 아내가 걸어왔고 딸 앞에 펼쳐질 삶이 그대로 나열되고 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툭 떨어뜨릴 뻔한 대목이 있다.
"아버지께 꽃다발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었고, 가족들과 케이크를 자르며 파티를 열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엄마, 언니, 여동생과만 공유하는 비밀일 뿐이다. 귀찮고 아프고 왠지 부끄러운 비밀"(61쪽)
나는 딸의 생리가 시작된 날, 딸에게는 엄청난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이 시작된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다.
이제는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점점 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만큼, 세상의 반을 아무 이유없이 차지하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내가 먼저 읽고 아내와 딸에게 건네 줬어야 하는데, 그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책을 덮는다. 이제는 아들이 읽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