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쓴 글

길게 뻗은 길 위에서의 짧은 생각

필85 2018. 6. 11. 17:56


아래글은 '백년어' 제34호(2018.06)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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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은 길 위에서의 짧은 생각

 

신록이 깃들기 시작한 3월말부터 전북 완주에서 몇 주간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매일 저녁 일과 후 연수원에서 제공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봄기운이 차오르는 길에는 논두렁 태우는 냄새 비슷한 것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지방을 골고루 발전시킨다는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아파트도 들어섰지만 본래의 시골 냄새는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런 향기가 좋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그것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뇌에 퍼지면서 엔돌핀까지 뿌려 놓기 때문이다. 저녁산책을 하고 하숙집까지 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홀로 걷는 길에서의 생각은 뿜은 담배 연기처럼 제멋대로 흩어진다.

  

길을 걷고 있으려니 길에 대한 생각이 절로 났다. 찬란한 길을 걷던 최고의 권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주먹 불끈 쥐고 대중을 향해 호소하거나 화사하게 웃던 그들의 모습이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서거나 두 손 모으고 호송차에서 내리는 모습으로 재빠르게 바뀌는 장면을 나는 매일 소비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신의 비단길이 사실은 천길 낭떠러지였다는 것을 꿈엔들 생각해 보았을까? 자신이 걷던 길은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요즘처럼 자주 생각나는 시절이 없을 것이다. 일가(一家)를 이루며 예술계의 거목이라고 일컬어지던 연극인이 길()을 벗어난 행동을 저질렀다고 한다. 영화배우, 감독, 교수 그리고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들이 치졸한 행동을 일삼은 탓에 수사기관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고운 시를 쓰던 시인도 술자리에서의 모습은 딴판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은 후배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었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희롱했던 사람들을 길가에 채이거나 밟히는 돌부리나 잡초쯤으로 생각했으리라.

  

옥에 갇힌 권력이나 옥에 갇힐 유명인이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이 영원히 길게 뻗어 있을 것으로 착각했고 누구도 그들의 길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때도 틀렸고 지금은 죄 값을 치를 때다.

  

집 가까이 올 때 즈음이면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머문다. 우선, 두 손을 비워 두어야겠다. 나는 이번에 교육을 오면서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길을 다니게 되었다. 손을 자유롭게 두니 머리도 편해졌다. 새로운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다.


두 번째는 멀리 보면 좋겠다. 발밑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되겠다. 멀리 보는 습관을 들이면 내 앞의 길이 언제쯤 끊어질지 가늠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좋은 길동무를 두어야겠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갈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도 좋겠고 자신을 채근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좋겠다. 나는 만년에 새롭게 시작한 공부를 동무로 두고 사귀고 있다.

  

길에 대한 어원을 알지는 못하지만 내 마음대로 추측해보자면 길다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모든 인간은 길 위에 있고 그 길은 길게 뻗어 있다. 내가 걸어갈 길이 천리, 만리 이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벼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꽃길만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흙길, 진창길을 만날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인지, 아니면 겉만 번지르르한 타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발걸음 멈추고 잠시 내 안에 머물자. 아무리 잘못되어도 손쓸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길은 어디에나 있으며 갈 길은 아직 멀고 길다.

  

문 앞에 도착하고 보니 흩어졌던 생각이 절로 모였다. 해 저물어가는 산책길에서 길은 길로 다시 길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2018.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