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생략)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 할 무렵부터, 그후로 군복무기간을 제외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고 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작가' 다음으로 '여행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여행에 관해서 써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룬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천재적인 이야기꾼답게 술술 풀어가는 그의 여행이야기를 듣다보면 집안 어디에 박혀있을 캐리어를 끄집어 내고 싶어진다.
저자는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경험을 되살려, '우리는 간접적으로 타자를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여행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특정 도시를 방문하여 참여자가 각자 다른 장소를 방문하고 난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 각자의 여행에 대하여 잡스런 이야기를 하는 여행과 토크쇼의 결합작품이다. 장소에 얽힌 역사와 경험을 서로 나누다보면 새로운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곱씹어 보면 직접 방문한 여행지에서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도 좋지만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작가가 내린 결론이라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생략)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과 함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는 문요한의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책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 천천히 걸어본 적이 없었다는 40대 후반의 정신과 의사가 길에서 발견한 새로움과 치유, 성찰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행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한 책으로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이 읽어 볼 만하다. 나는 이 책에서 러스킨을 안내자로 등장시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라고 권한 부분(나는 이 책을 읽고 서면에 있는 미술학원에 몇 달간 수업료를 바친 적이 있다.)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쓰야 한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을 기억하게 하는 글쓰기'는 7년동안 50개국을 홀로 여행한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그녀는 경험이 값지려면 성찰이 필요하고 그방법으로는 글쓰기가 최고라고 한다.
여행과 관련된 제법 무거운 책은 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 禪과 모터사이클의 관리술>이다. 일단 페이지 수가 800페이지에 달한다. 책의 부제는 '가치에 대한 탐구'이다. 한때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저자가 아들과 모터사이클 여행을 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저자가 던지는 화두에 모두 호응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몇 년 전, 이 책을 읽고 적어 둔 독후감에 '철학이 재미있다'라고 쓰여진 것을 보면 여행과 관련된 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여행의 이유>를 알지 못해서 우리가 여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할 수 없는 핑계는 열가지가 넘지만 낯선 곳에 자신을 두어야만 하는 이유는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여행을 떠나는 순간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설렐 것도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행'이라는 행위보다는 단어 그 자체에 매료된다. '여행'이라는 활자를 눈으로 맞이하며 천천히 입밖으로 '여행'을 내뱉는 순간, 살짝 열린 입술사이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낯선 곳에서의 삶이 펼쳐진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지난 일주일은 뜨거운 날씨 만큼 분주했던 날들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독서와 수영, 그리고 더위를 가시게 하는 통쾌한 액션 영화 한 편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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