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_이반 일리치_190818

필85 2019. 8. 18. 23:47
"저는 과거라는 거울에 비춰볼 때만 우리 20세기의 정신위상이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알아 볼 수 있고, 나아가 대개는 오늘날의 관심사에서 밀려났지만 그런 결과를 낳은 논리적 공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 문명에 근원적 질문을 던진 위대한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연설문을 모은 것이다. 개발, 교육, 주택, 물, 컴퓨터, 신체, 엔트로피 등 일상적 삶과 철학적 주제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정치 사상가인 더글러스 러미스는 책 말미, <이반 일리치를 회상하며>라는 글에서 일리치는 '모두가 믿는 것,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고자 했다'면서 '현재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유럽의 중세, 특히 12세기를 연구했다. 그는 12세기는 현대의 여러 중요한 전제가 형성된 시기로 봤다'고 한다.

그가 내린 현대문명의 진단은, 병원은 치료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병을 만들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배울 능력을 빼앗는 것이다. 감옥은 죄를 양산하고, 자동차는 교통을 지체시킨다. 또한, '복지도구와 보험체제 때문에 모든 사람이 환자가 되도록 훈련'받는다고 한다.

  학식이 높은 독서가 여섯 명이 컴퓨터에서 '삭제'라는 글쇠와 마추쳤을 때의 반응을 관찰한 내용도 새겨들을 만하다.
"(그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고, 그 중 둘은 실제로 메스꺼워했습니다. 범위로 선택한 문장이 사라지자마자 글자들이 당겨오며 그 공백을 메우는 광경을 이들은 하나같이 불쾌한 경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잊을 때는 이런 방식으로 잊는게 아닙니다."

DELETE(삭제), COPY(복사), Ctrl+Z(되살리기), 우리가 별다른 감흥없이 시행하는 것들이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보면 혁명적인 사건이다. 이런 급진적인 변화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쉽게 버리고 권력자의 논리와 체제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쯤은 멈춰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연설문이라고는 하지만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은, 철학적인 문장이 가득한 글 중, 가슴에 와 닿는 글이 있다. '오늘 아침 저는 마하트마 간디가 살았던 오두막에 앉아, 이 오두막을 만든 정신과 교감하며 그 교훈을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간디의 오두막에서>라는 연설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으는 갖가지 기구나 물건이 결코 내면의 힘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은 사회뿐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당장 필요한 만큼만을 자기것으로 지니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면의 힘을 기르기 보다는 무엇을 더 소유할 것인가, 어떤 지위(힘)를 차지할 것인가에 정신과 몸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거울에 비춰본다. 간디의 오두막집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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