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파국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법정으로 오면 된다."
이 책은 7년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경력법관제도로 판사가 된 현직 법관이 그 동안의 경험을 적은 글이다. 그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 판사에게도 판결문에 쓸수 없는 이면이 있음을,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정이 해체되고 탐욕과 이기심이 끝장을 보는 글을 읽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 중 사회로부터 주목 받지 못하는 소수자에 대한 생각과 청소년 범죄에 대한 주장에 공감이 간다.
"우리는 누군가의 주석이다. 많은 이에게 언급되고 설명되는 이는 운 좋은 사람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누구에 의해서도 거론되지 않는 사람들,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록 설명은 줄어든다."
"누군가는 노숙인이나 노인이나, 난민이나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나 이주노동자나, 장애인이나 극빈자들이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키고 자신의 저녁 있는 삶을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보호된다면 적어도 그 누군가의 권리는 더 두꺼워진다. 그 누군가는 좀더 법의 보호 아래에 놓이게 된다."
저자는 사회로부터 멀어져서 누구도 언급해 주지 않고 설명되지 못하면서 법정에서도 변호 받지 못하는 자를 왜 도와줘야 하는 가에 대하여 명쾌한 답을 주었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가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면 한 순간에 어떤 사람이든 소수자가 된다. 지금의 소수자를 사회적 비용을 들여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나도 버림 받게 될 것이다.
저자는 부산가정법원에서 소년 재판을 한 경험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청소년 범죄로 우정이, 이웃이, 가정이 부서지는 사례들을 나는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저자는 소년범의 재활을 돕기 위해 판사의 체면은 접어두고 후원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는 '아이들에게,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의 진정어린 위로와 배려, 걱정어린 시선이 함께한 때가 있었다는 기억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영화 <스포트 라이트>(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보도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대사를 인용하면서 '한 아이가 망가지는 데도 온 집안과 마을이 필요하다.'고 꼬집는다.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다.'라는 러스킨의 시를 인용하면서, 저자는 '세상에 나쁜 아이도 없다. 서로 다른 처지의 좋은 아이만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독자에게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책은 올 해 7월에 발간되었다. 저자는 '정의'에 대한 고민과 함께 최근 몇 년동안 제기된 사법부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폭주하는 업무와 과로사한 판사의 이야기를 통해 사법부 현실을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유, 평등,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공정한 눈으로 밝은 세상을 만드는'(<법원 사람들>이라는 법원 소식지 안내문구 인용) 법관이 작가 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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