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산휘야 소풍가자_하미영 외_201003

필85 2020. 10. 3. 17:35

입사 14년차, 결혼 8년차, 워킹맘 6년차' 저자는 변화를 모색했다. 몇년을 기회만 살피고 있었던 유학을 결심한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을까? 어쩌면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야 적성이 풀리는 나의 성격 탓일 수도 있다. 그에 더해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 자신의 꿈을 찾아서 인도네시아에서 홀로 직장생활하는 남편, 엄마와 아내의 역할보다는 직장인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저자, 이들은 워킹맘 직장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를 계기로 완전체가 되어 한국을 떠났다.

 

<산휘야, 소풍 가자>(하미영.박현준 저), 이 책은 영국 생활을 위한 준비과정부터 시작한다. 비자 면접, 장기 주거를 위한 주택 임차, 아이 학교 입학 준비, 자신과 남편이 공부할 대학 선택과 허가받기 과정이 급박했던 당시의 분위기와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었다. 이후 영국에서의 일상과 틈새 유럽 여행, 학업과정, 이웃과 소통하기에 대하여 부부 각자의 시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책을 채우고 있다.

 

경쟁이 일상화된 한국사회에서 워킹맘으로서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에 대한 숨구멍을 찾기 위해 1년간의 유학을 떠났지만 영국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부 모두 만만치 않은 학위과정을 밟았고 부모의 참여가 중요한 아이의 학업도 이어갔으니 글을 보지 않아도 알겠다. 나중에는 친정식구가 와서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바쁘고 힘들었겠지만 한국에서의 고생과는 확실히 달랐던 것 같다.

 

"영국에서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던 이유는,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에도 우리 세 식구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략)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SNS 친구들과 비교해가면 나의 행복을 저울질했던 한국에서의 삶과는 달리 찢어진 우산을 쓰고도, 허름한 옷을 입어도 당당할 수 있었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영국에서 누렸던 또 다른 행복의 근원이었던 듯하다."

 

최근 업무때문에 알게 된,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워킹맘은 볼때마다 에너지가 넘쳤다. 한 명 더 늘어난 가족과의 다정한 시간도 sns에 한번씩 올리는 것을 보면 일, 가정 모두 잘 챙길 것 같다. 그기다 책까지 펴냈다. 두 번째 책도 나올 것 같다. '산휘야, 설휘야, 캠핑가자'라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요즘, 이 책은 15년전 아들과 함께 다녀온 영국여행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오랫만에 묵은 파일을 펴보았다. 세익스피어 생가와 카디프의 로스파크, 저수지, 포스콜 해변, 워익성, 지금 떠오르는 모든 것의 이미지는 평안함이다.

 

여행하는 것과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며칠간의 여행이 혀끝만 스치고 소화되는 것이라면 1년간 살아본 워킹맘 가족의 경험은 섭취한 영양분이 뼈를 형성하지 않았을까,하고 짐작해본다. 내 형편과 입장으로 한국을 떠나 살아볼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여행과 독서는 닮았다. 나를 낯선 곳에 두고, 경험을 통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다. 클수록 좋겠지만 티끌만치라도 변해준다면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