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만 두고 보면 언어에 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 책은 비평가 존 버거가 말년에 쓴 수필집이다. 책의 첫 문장에서 저자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고 하였다.
이 책에 실린 짧은 글은 모두 11편이다. 비교적 온화한 시각에서 자화상, 당돌함, 깨어있음, 망각에 대한 생각과 로자 룩셈부르크, 찰리 채플린의 삶에 대해 그 자신의 방법으로 추모한 글이다.
그가 글을 쓰는 방법을 표현한 문장이 흥미롭다. 그는 먼저 '몇 줄을 쓴 다음엔 단어들이 다시 자신들이 속한 생명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내버려둔다. 그러면 거기에서 한 무리의 다른 단어들이 그 말들을 알아보고 맞아준다.'고 한다. 단어들은 작가가 부여한 역할과 의미에 대해 담소를 나누며 경쟁하거나 글쓴이에게 질문한다.
"그러면 나는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한두 개 바꾸어서 다시 밀어넣는다. 다시 담소가 시작된다. 잠정적인 동의를 나타내는 낮은 웅성거림이 들릴 때까지 그 과정은 계속된다."
가벼운 생각거리를 주는 짧은 글이라고 하지만 평소 거의 언어가 가졌던 비평의무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투기 금융자본은 정부를 노예주인처럼 활용하고, 전세계 미디어를 마약 공급상처럼 활용한다. 이 폭정의 유일한 목표는 이윤과 자본축적인데,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소란하고, 위태롭고, 매정하고 설명할 수 없는 세계관 혹은 삶의 패턴을 강요한다."
존 버거는 전체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미디어가 폭탄처럼 쏟아내는 정보는 '대부분 계획적인 교란에 불과하며, 진실로부터, 본질적이고 다급한 것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들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존 버거가 제시하는 해법은 이렇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에 항의하고 저항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은 현재 명확하지 않거나 없다. 그 수단을 개발할 시간이 필요하다.(중략) 우리는 연대안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책의 마지막 부분)
111쪽의 책, 쪽수만큼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이 묵직한 울림과 함께, 독자에게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숙제를 던져주고 끝나버렸다.
존 버거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우리 시대의 작가>(조슈아 스펄링 지음)를 읽은 후 존 버거의 저서 <본다는 것의 의미>. <다른 방식으로 보기> 그리고 이 책까지 읽는 동안, 보는 것과 보는 방식, 그리고 출력물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다.
이 모든 행위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머리와 가슴에 형성되는 언어다. 이때의 언어는 '생각'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표현으로서의 언어 일수도 있겠다.
투기 금융자본이 강요하는 위태롭고 매정한 세계관 또는 삶의 패턴에 구속되지 않으려면 나의 언어를 가져야 할 것이다. 내가 만든 언어로 칭찬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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