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차정숙>은 한창 주가를 갱신 중인 배우 겸 가수 엄정화 주연 드라마다. 엄정화는 연기자로서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끌어가고 있고, 댄스가수로서 <댄스가수 유랑단>에서 세월에 굴하지 않는 미모와 춤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대학 축제 직캠도 상당한 조회수를 찍고 있다.
<닥터 차정숙>은 경단녀라고 할 수 있는 주부 차정숙(엄정화)이 20년의 시간을 깨고 다시 병원 레지던트로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려냈다. 차정숙이 다시 의사 수업을 받게 된 병원에는 그녀의 남편 서인호(김병철)와 아들도 있다. 남편은 유명한 외과의사이며 아들은 레지던트다. 문제는 남편의 첫사랑 차승희(명세빈)도 의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그녀는 해외에서 돌아온 후 다시 서인호를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서인호와 차승희 사이에 고 3 딸이 있으며 차정숙의 딸과는 친구사이다. 더더욱 큰 문제는 차정숙이 이미 간이식을 받은 적이 있는데, 과중한 레지던트 업무와 스트레스로 한번 더 간이식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회를 거듭하면서 스토리가 차곡차곡 쌓였다. 드라마는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막장 드라마 요소가 있지만 파국은 아니다. 시청률도 올라가면서 마지막 회는 18.546%를 찍었다. 장르 종합1위를 차지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아쉬운 게 없어서 아쉬웠다. 그 사람은 참 안 됐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시청자들이 출연진 한 두 명에게는 마음이 써여야 할 텐데 그런 게 없었다.
연기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소화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파국이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김병철은 회를 거듭하면서 찌찔한 '하남자'('상남자'의 반대말)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차정숙의 주치의이자 그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민우혁(로이킴 역)도 새롭게 조명되었다. 나는 차정숙 아들의 애인역으로 나온 조아람(전소라 역)의 찰진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여러 주제, 즉 의사의 사명, 불륜, 혼외자녀(드라마에서는 '외방자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가사노동, 시댁 갈등, 노년 연애 등이 있지만, 나는 '경력단절 직장인의 재취업'에 관심을 가졌다. 작가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 병원에 집에서 애 놓고 기르다가 다시 들어온 레지던트가 있어, 대단하지 않아?"
일반적인 업무도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전문직인 경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는 두뇌가 가장 잘 돌아갈 때 많은 지식을 쌓아둬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정숙이 가장 잘하는 게 공부였다고 하니 가능했을까? 드라마니까 가능하다. 작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의사도 하는데 당신이라고 못할 게 뭐 있겠어, 걍 새로운 삶을 시작해 봐!
"죽었어요"
회식 자리에 남편은 뭐 하냐고 묻는 질문에 차정숙이 죽었다고 말했다. 맞은편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살아있는 남편은 맥주를 뿜었다. 시청자들이 가장 통쾌함을 느꼈던 장면이었으리라. 자정숙은 20년을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식구를 보살펴왔다. 간이 망가졌지만 남편이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며 간이식을 거부했을 때, 차정숙은 남편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엄정화의 매력에 빠졌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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