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백 번 읽는 것 보다 <사기> 한 번 읽는 것이 낫다.”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의 저자 김영수의 주장이다. 저자는 소설인 <삼국지>와 정통 역사책인 <사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김영수는 책의 머리말에서 <사기>를 읽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들면서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답게 살기 위한 안내서로 <사기>를 추천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의 신화시대부터 기원전 2세기말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왕들의 연대기를 다른 본기(本紀) 12편, 본기에 등장하는 제왕 및 제후들의 연표(年表) 10편, 역대의 정책과 제도, 문물의 발달사인 서(書) 8편, 제후들의 이야기인 세가(世家) 30편, 영웅, 정치가, 학자, 기인을 다룬 열전(列傳) 70편이 사기의 내용이다.
사마천은 장군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한 사건을 변호하다가 절대군주체제를 확립한 무제의 분노를 사서 사형을 당할 처지였다. 그는 사형대신 남자로서는 치욕스러운 궁형(宮刑, 거세를 당하는 벌)을 자처하면서 구차하게 목숨을 빌어 세계적 정신문화 유산인 <사기>를 저술하였다.
김영수의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는 <사기> 130편 중 저자가 인간학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분석한 자료들만 별도로 뽑았다. 권력과 인간관계, 제국의 흥망, 책략가와 유세가, 리더쉽, 그리고 당시의 부자들의 이야기 등이 688쪽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김영수는 20년을 <사기>의 해석에 매달렸다. <사기>를 주제로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2006년), <사기의 인간경영>(2007년), <난세에 답하다>(2008년) 등 한동안 매년 <사기>와 관련된 책을 펴냈다. 저자는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였고, 외국인으로서 사마천의 고향인 서촌마을의 명예 촌민이 되었다. 김영수를 보면서 로마역사에서 일가를 이룬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를 떠올렸다. 이제 <로마인 이야기> 같은 대작을 일궈내기를 기대한다.
나는 김영수의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에서 오(吳)와 월(越)나라의 싸움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오왕 합려가 월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사망하고 합려의 아들인 부차는 3년을 벼른 끝에 회계산에서 월왕을 포위하였으나, 월나라 책략가인 범려와 문종의 계략에 말려 구천을 죽이지 않고 인질로 잡아둔다.
오나라에서 3년간을 비루하게 목숨을 구걸한 구천은 귀국 후 쓰디쓴 쓸개를 혀로 핥고 장작더미에 누워 고통을 참아가며 재기에 성공한다.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한 구천은 오왕 부차의 화해제의를 물리친다.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월동주(吳越同舟)도 막을 내린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책략가로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은 시체를 꺼내 300번 채찍질한 ‘굴묘편시(掘墓鞭屍)’의 주인공 오자서, 구천왕과 고난을 같이 할 수는 있지만, 영화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월나라를 탈출하고 나중에 커다란 부(富)를 이룬 범려, 범려의 충고-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를 무시하고 주저하다 목숨을 잃는 문종이 있다. 인물중심으로 전개된 두 나라의 싸움이야기에 잡은 책을 놓을 줄 몰랐다.
그 외, 책에는 천하를 호령하다가 해하전투에서 죽음의 이별노래를 부른 항우를 비롯하여 친구였던 방연에 의해 무릎아래를 잘리고도 ‘마릉 전투’에서 뛰어난 책략으로 승리를 이끌고 복수를 하는 손빈, 시정잡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면서 때를 기다린 한신 등 많은 지략가와 영웅이 등장하여 소설 <삼국지>에 뒤지지 않는 재미와 감동이 숨어있다.
다시 ‘사마천’ 이야기로 돌아가자. 일개 태사령(천문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벼슬)에 불과한 사마천은 방대한 역사를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사기>를 저술하였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사기>를 저술하게 하였을까. 남자로서 치욕스러운 삶을 살면서 그는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를 손가락질하던 모든 이들이 먼지처럼 사라졌지만 2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빛나는 그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세상에 대한 그의 복수는 이루어졌다.
돌이켜 생각하면 다른 깊은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무 살에 중국 여러지방을 여행했던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글로 남겨 후손들의 삶을 바르게 이끌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의 염원은 시공을 초월하여 결실을 맺었고 <사기>는 인류의 지적인 유산이 되었다.
<사기> 130편을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김영수의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는 읽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사기> 전권을 읽는 것도 도전해 볼 일이다. <삼국지> 백 번 읽는 것 보다 낫다고 하지 않는가.
- 2011. 5. 26(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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