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태백산맥

필85 2012. 11. 18. 17:55

태백산맥은 여순반란사건부터 한국전쟁 휴전까지의 시간동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민중들의 이야기다. 전남의 벌교와 보성을 중심으로 생각이 갈라져 삶과 죽음의 경계도 달랐던 우리의 부모형제 이야기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가진 것 없는 사람도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던 사람들은 산속에서 굶어죽거나 얼어 죽었고, 일제시대부터 권력에 빌붙었거나 기회주의적인 인생을 탐했던 사람들은 그 자리를 유지하였다. 이도저도 아닌 민초들은 숨죽인 세월만 보냈다.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 과는 다른 역사를 배우게 되었다. 비록 소설을 통해서이지만 그들도 우리의 형제이며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이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부정권하에서 용기를 내어 소설을 쓴 작가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보낸다.



<태백산맥 1> 한의 모닥불


'우리의 분단된 삶을 통찰함에 있어서 1948년 10월 19일에 여수, 순천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은 분단비극의 시발점으로서의 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작가 조정래는 소설의 서두에 일러두고 있다. 장편소설 <태백산맥>의 출발점이다.


태백산맥 1권의 첫 이야기는 '일출없는 새벽'이다. 해방후 좌익과 우익,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이 심화되고 마침내 살육으로 이어지는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타이틀이다.


소설에는 사회주의자이면서 혁명을 꿈꾸는 염상진과 그의 후배 정하섭과 하대치, 민족끼리의 단합을 주장하는 김범우가 등장한다. 김범우는 좌익과 우익을 넘나들면서 고민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수, 순천 사건이후 우익들에 의한 살인광풍이 다시 벌교를 휩쓴다. 좌익들은 무리를 지어 산으로 들어가서 투쟁을 준비한다.


해방후 벌어진 부와 권력의 세습은 어쩌면 현 시대 상황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 같다. '군정이 사회주의 만들고, 지주가 빨갱이 만든다'는 말은 군정과 친일세력인 지주가 야합하는 과정에서 양심있는 지식인이나 굶주리는 소작농민들이 가야만 하는,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길을 잘 표현해 주는 문장이다.




- 조정래, 해냄, 342쪽

- 2012.3.26.


<태백산맥 2>


빨갱이 남자들은 산으로 피했지만 마을에 남은 아내와 부모들은 경찰로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고 그들은 염상진 위원장의 동생인 염상구가 조직한 청년단으로 부터 감시를 받는다. 좌익의 지배에 있을 때 아버지를 잃은 지주들의 자식들은 복수를 위하여 그들만의 패거리를 만들어 빨갱이의 가족들에게 사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공격으로 하대치의 아버지가 맞아 죽었다. 지주의 자식들은 무차별적인 폭력외에 그들의 죄의식을 빌미로 빨갱이의 아내를 겁탈하는 비겁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 격분한 빨갱이 몇 명은 대오를 이탈하여 마을에 내려갔다가 토벌대와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사회주의 이론가인 안창민은 총상을 입게되고 마을에 숨어 치료를 받는다.


김범우도 사리사욕에 꽉찬 국회의원에게 밉보여 곤욕을 치르게 된다.


<태백산맥 3>


염상진은 마을의 좌익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안창민의 애인인 이지숙과 책방주인 문기수를 포섭하고 임무를 시달한다.


산으로 간 빨갱이를 제압하기 위해 계엄부대 200명이 투입되었다. 학병출신인 심재모 계엄대장은 마을 지주들의 기대와는 달리 좌우 균형잡안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좌익활동으로 잠적중인 정하섭의 아버지가 술도가와 토지를 몰래 처분하는 것을 눈치챈 소작인들의 항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심재모는 소작농과 토지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토지문제란 동학난으로 불거진 소작민의 불만이 일제시대 동양척식회사의 토지조사사업을 계기로 한층 썩어 들어가게 되었고 미군정 시대의 쌀 사재기 사건으로 농민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마침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식 토지정책(무상물수 무상분배)을 시행하자 미기적 거리고 있는 남한의 농민들은 더욱 낙담하게 되고 이것은 여수순천사건에 많은 소작농들이 참여하는 계기기 되었던 것이다. 작가 조정래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농민문제가 곧 나라의 문제라고 했다.


전라도 사투리에는 욕이 많다. 그것은 농부들의 억울함의 표출 방식이라고 한다.


소설의 무대가 된 벌교에 가보고 싶다.


- 2012.3.30.


<태백산맥 4>


염상진의 빨치산 부대는 기습적으로 율어면을 장악하여 해방구를 만들었다. 지주의 곳간을 열어 농민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이야기는 아사직전에 놓인 타 지역의 농민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벌교에서는 계속하여 지주와 소작농의 분쟁이 발생하였지만 계엄대장인 심재모는 억울한 농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을 처리하면서 지주들에게는 점점 미운 오리가 되어간다.


한편 지주의 아들이지만 빨치산인 정하섭과 무당의 딸인 소화와의 사랑은 애뜻하게 계속되어 갔지만 소화가 염상구에게 잡혀가 고문을 당하면서 뱃속의 아기를 잃게되어 위기를 맞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안창민과 사랑에 빠진, 투철한 지식인인 이지숙도 경찰에게 잡혀가 욕을 보지만 신분은 그대로 감출 수 있게 되었다.


<태백산맥 5>


중반으로 치닫는 태백산맥 5권의 주요내용은 <농지개혁법> 통과와 김구선생의 피살이었다.


남한에서는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원칙이 국회에 통과되면서 지주와 소작인 양측 모두의 반발을 받았다. 지주는 땅을 미리 빼돌리거나 매수대상 제외농지안에 들도록 꼼수를 부렸다. 가진 것이 없는 소작인은 지주를 찾아가 탄원을 하거나 이도 여의치 않으면 집단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김구선생의 피살은 진정으로 민족을 생각하는 지식인들과 국민들에게는 끔찍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 습격으로 자신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더욱 공공히 하면서 김구선생마저 군인인 김두희에 의해 희생됨으로써 더이상 방해할 세력이 없게 되었다.


앞으로 이 나라는 어찌될 것인가?


<태백산맥 6>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농지개혁법이 시행되면서 토지를 뺏기지 않으려는 지주와 소작인들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소작인과의 다툼에서 야비한 수를 사용한 정하섭의 아버지가 성난 소작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염상진 일당은 힘든 겨울을 보내면서 많은 동지들을 잃게 되지만 다행스럽게 마을에 남아있는 이지숙의 조직은 건재하다.


마침내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즉각 유엔이 개입하고 국군작전권도 유엔으로 넘어간다. 국군은 전라도까지 포기하고 후퇴를 거듭하면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다.


벌교에서는 경찰과 청년대원들이 주동이 되어 한때 좌익이었던 사람들의 조직인 보도연맹원들을 몰살한다. 여순반란사건의 축적된 경험때문이었다. 북한군의 점령이 시작되면 보도연맹을 중심으로 복수가 진행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혼란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북한군에 대한 묘사가 특이하다. 그들은 남한 인민들에게 폭력적이지 않고 돈을 주고 먹을 것을 구입하는 등 그야말로 해방군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좀 더 읽어 봐야겠다.


<태백산맥 7>


한국전쟁 발발과 중공군 참전사이의 이야기가 제7권에 전개된다.


그동안 산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빨치산들이 살아서 마을에 돌아왔다. 염상진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재빨리 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직적으로 농민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토지의 무상몰수 부상분배가 시행 되었다.


그러나 첫 추수도 하지 못하고 미국의 인천상륙으로 빨치산은 다시 북으로, 아니면 산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부역자들도 바리바리 짐을 싸서 마을을 떠나야 했다.


작가는 다시 피난을 떠나는 민초들의 모습을 눈앞에 두고 그리듯이 글을 써갔다.


이학송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중공군의 등장은 벼랑끝에서 맞이한 믿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태백산맥 8>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갔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한 서울을 다시 한차례 빼앗겼다가 도로 찾았다. 국토의 중간쯤에서 서로 밀고 밀리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죽어나는 것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었다. 남쪽은 남쪽대로 빨치산과 경찰, 토벌군의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거창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다. 군인들이 무고한 마을의 주민들을 몰살하였다.


이즈음 강제로 징병을 하면서 닥치는 대로 남자들을 잡아서 훈련소로 이송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 병으로 죽어나갔다.


그 참담했던 시대의 이야기를 조정래 소설의 주인공들이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그렇게 죽어 갔거나 인간이하의 삶속에서 고통을 끼니삼아 목숨 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빨치산의 삶들이 나의 가슴을 깊게 짓누른다.


<태백산맥 9>


한국 전쟁중에 일어난 국민의 물적피해와 정신적 고통이 조정래 작가에 의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가장 커다란 고난을 받으면서 이름없이 묻혀간 빨치산의 입장에 선 것 같다. 소설에서의 '적'이란 남한의 경찰과 군인을 일컫는 것으로 봐서 나는 미루어 짐작해본다.


빨치산의 삶의 궤적과 그들이 토해내는 말들은 지금의 사회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이제 마지막 한 권을 앞두고 빨치산은 지리산으로 모였다. 지리산은 그들이 묻힐 곳임을 안다. 10권을 펼치기가 두렵다.


<태백산맥 10>


국방군의 겨울 대공세가 시작되면서 빨치산들은 얼어죽고 굶어 죽었다. 눈밥과 소금만으로 사오일을 버텨야 했고 눈밭위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1952년 5.15결졍에 의해 '산속의 열명보다는 인민속의 한 명의 당원이 낫다'는 당의 방침에 일부는 위장 자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휴전결정으로 당은 현실투쟁에서 역사투쟁으로 노선을 바꾼다. 역사투쟁이란 무엇인가?


염상진은 당의 지도지침을 알리는 자리에서 '현실투쟁은 인민해방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눈앞에서 성취시키는 것이며, 역사투쟁은 인민해방을 우리가 목숨을 바쳐 뒷날 역사속에서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역사투쟁은 바로 목숨을 바치는 죽음의 투쟁' 이라고 선언한다. 역사투쟁을 한다는 것은 산에서 죽자는 선언과 다름 아니다.


그렇게 염상진도, 이대식도, 손승호도 죽어갔고 위장결혼으로 자수한 안창민과 이지숙은 잡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염상진의 무덤을 다녀가는 하대치만 소설속에서 살아 남았다.


북은 휴전으로 빨치산을 버렸으며 남조선 투쟁실패를 이유로 남로당을 모두 숙청하였다.


소설의 끝부분에 한 노인이 한탄한다. 쓸만한 사람은 다 죽어없어지고 죽쟁이만 남았다고.


역사투쟁을 알리는 강연회에서 빨치산들이 한 말이 아직 가슴에 남아있다.

"입산투쟁험시로 산 3년이 질로 조은 세상이었소"

"나넌 쌀밥얼 배가 터지게 묵었으면 좋겠소"

"나넌 장개럴 가고 잡아 죽겄소, 누가 중매 잠 나쓰씨요"

이들의 토론은 어느듯 유언으로 변해버렸다.


지리산 어느 구석에 묻혔을 그들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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