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 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문학비평가인 황현산 교수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한 문장만 뽑아내라면 나는 이 문장을 내 놓을 것이다.
저자는 한겨례 신문과 국민일보에 실었던 자신의 칼럼과 80년대와 90년대 사회 이슈와 생활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수필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에 우리가 읽는 글과는 무게가 다르다. 책 속에 실린 ‘과거도 착취당한다.’, ‘상상력 또는 비겁함’, ‘내가 믿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대의 비천함’ 같은 글들은 비평가의 통찰력으로 우리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사진 한 장에 담겨있을 법한 사연에 대해 이야기를 지어낸 감수성 가득한 글들도 있다.
나는 책안에서 같은 의미를 가진 두 개의 문장을 발견하였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 만 같다.”(12p)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204p)
나는 감수성과 통찰력을 키우는 것에 늘 마음이 쏠려왔는데 노(老)비평가가 답을 주었다. 그는 현재의 폭을 넓히거나 두텁게 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어떻게’ 이다. 이에 대한 답은 첫머리에 인용한 문장 속에 있다. 저자는 세상과 많이 교섭해야 하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이 책에 담긴 최고의 글은 책의 맨 마지막에 놓인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이다. 저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문장단위로 풀어 해석하고 통합적으로 인간 노무현을 묘사했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은 노 전 대통령의 절명사에도, 황현산 선생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특히, ‘처절한 결단을 향해 추호의 주저함도 없었던 고인의 유서에는 짧은 문장과 비교적 긴 문장이 어울려 만드는 단호한 리듬감과 처연한 속도감이 있다.’는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 문장은 짧게 살았지만 긴 여운을 남기고 간 고인의 단호한 삶과 처연한 죽음 앞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황현산 선생의 저서 <밤이 선생이다>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일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가꾸고 지켜온 저자의 일관성에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관성이 우리사회를 한 쪽으로 지우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내게는 조금 과분한 책이다.
- 2013.11.27(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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