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스페인 아라곤 지방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 힘든 도시생활을 하면서 혼란한 정치상황 속에서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 프랑코 독재정권을 거치는 동안 그의 아나키즘은 종말을 고하고 결혼으로 그동안 ‘지켜왔던 자존심과 사상을 매장’시켰다. 한때는 그의 일상이 그가 그토록 멸시했던 모습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양심에 따른 삶을 살았다. 그리고 90세가 되던 해, 양로원 5층에서 신발을 벗어두고 하늘을 날았다.
어쩌면 이 책의 속살은 에필로그에 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이 아나키스트로서 남긴 200쪽의 글을 그의 아들이 그래픽노블(만화소설)로 펴낸 사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살한 양로원으로부터 며칠간 미납된 이용료를 내라는 편지를 받은 후 아들은 국가와 관료사회와 싸우면서 아버지의 삶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 <태백산맥>(조정래 저)에서 마지막 모임을 가지던 빨치산들의 최후가 생각났다. 그들은 순수한 사상가였지만 가뭇없이 사라졌다. 책 속의 주인공도 한때는 세상을 바꿀 기세로 덤볐지만 말년에는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했다.
이 책의 그림은 예쁘게만 그리려고 하는 우리나라의 만화와 느낌이 달랐다. 한 컷 한컷이 내게 주는 인상이 강하다. 흑백의 강약만으로 화자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책 제목인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보다는 <아버지의 고백>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화자의 삶에 존경을 보낸다.
- 글 안토니오 알타리바, 그림 킴, 번역 해바라기 프로젝트/길찾기
- 201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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